캐나다 생활 20년이 준 깨달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

2023.12.15 16:10 입력 2023.12.15 17:41 수정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캐나다에 살면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대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토론토의 주택가에 사진과 같은 숲길이 있거나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기에 아주 좋다.

캐나다에 살면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대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토론토의 주택가에 사진과 같은 숲길이 있거나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기에 아주 좋다.

지난 11월25~26일 주말을 이용해 미국 시카고에 다녀왔다. 자동차로 10시간이 걸리는 800㎞ 먼 길이었다. 겨울철 운전이 만만치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하루 종일 내린 진눈깨비 때문에 미끄러웠다. 이틀 왕복 20시간을 운전하여 그 먼 길을 다녀온 이유는, 한국 사는 내 고교 친구가 시카고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토론토로 넘어오기 어렵다고 하여 내가 움직여야 했다. 하루 10시간 운전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틀 연속 장거리 운전은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겨울이라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절친’의 부름에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시카고를 처음 방문했는데도 그 아름답다는 도시 구경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후 3시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간 이후, 이튿날 오전 11시까지 친구 부부와 꼬박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해도 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운전 피로가 며칠간 지속되었으나 속은 더없이 시원했다. 친구를 만난 달콤한 시간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피로는 기꺼이 감수할 만했다.

‘다른 삶-성우제의 경계인’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5월에 연재를 시작했으니, 3년6개월 동안 매달 거의 쉼 없이 글을 써왔다. 연재 내용은 말 그대로 캐나다 사는 한국 사람의 ‘다른 삶’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40년을 살다가 캐나다로 건너와 사는 삶이 ‘한국과는 이렇게 다르다’고 전하는 내용이었다.

“교육·자연·식품 빼고 한국 좋아”
캐나다 이주한 후 초기 했던 대답
투표 통해 응징하는 문화 인상적

가족끼리 김장하는 모습 부럽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점점 깊어져
그런데 막상 한국 가면 낯설어

원고를 마흔 개 가까이 쓰면서도 캐나다에서의 다른 삶이 한국과 비교해 ‘어떻게 좋다’ ‘어떻게 안 좋다’ 따위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마지막 원고의 쓸거리를 찾으며 돌이켜보니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이 그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 초기부터 캐나다살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내 지인들은 줄기차게 묻는다.

“캐나다 살아보니까 어때? 좋아?”

짧게 말하자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사람 사는 곳은 거기가 거기다”쯤 될 것이다. 이곳에 살기 전에는 맛보기 어려웠던 좋은 점도 많고, 친구를 만나려고 이틀 20시간을 운전하는 것과 같은 절절한 그리움과 아쉬움도 참 많다.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보니, 그런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화하기 어려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일 따름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기 바란다.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 한국 사회에는 캐나다 이민 바람이 불었다. 한국 언론은 그것을 ‘교육 이민’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와서 보니 그 말이 대체로 맞았다. 본래 이민이란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살러 가는 것이다. 후진국 사람들은 선진국의 풍요로운 삶을 좇아 이민을 떠나고, 선진국은 부족한 인구 때문에 외국 이민자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20여년 전 나 같은 한국 이민자들은 이민의 보편적인 정의와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잘사는 나라였다. 빈국 출신의 어느 이민자는 “자동차 생산국에서 자동차도 못 만드는 나라로 왜 이민을 와요?”라고 내게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20여년 전 한국 이민자들이 캐나다행의 이유로 내세운 자녀 교육 측면으로 보자면, 캐나다는 살기 좋은 나라가 맞다(물론 크게 보아 그렇다는 것이지 세부적으로 보자면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나로서는 10대 성장기에 자녀들이 입시지옥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11학년(한국의 고2) 이후 성적 관리를 해야 하지만(캐나다 대학은 내신성적과 한국의 학교생활기록부 같은 것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부모나 자식이나 거기에 생활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일은 없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알고 찾아간 2년제 대학이 아무 생각 없이 밀려서 진학한 4년제 명문대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2년제 전문대학에 가겠다는 아들 때문에 속상해하는 내 또래 한국인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아들이 학업을 마치고 큰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독립하자 많이 기뻐했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하거나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학력이나 ‘간판’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문화와 사회 분위기가 초중고교 교육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이곳에서도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있지만 남들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사교육이 ‘대세’가 될 가능성도 없다. 그저 어떤 과목 성적이 좀 부진하다든가 하는 필요에 따라 사교육을 시킬 뿐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다고, 또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녀는 물론 부모도 학교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다. 부모로서는 사교육비로 허리 휠 일도 당연히 없다. 대신 돈을 들여 운동이나 예술 활동을 시키는 부모는 많다. 그 또한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그때부터는 부모가 자녀에게서 ‘해방’된다고 보면 된다. 부모가 대학생 자녀 때문에 돈 쓸 일은 거의 없다. 대학생들은 대체로 대출을 받아 학자금을 충당하고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번다. 결혼도, 독립도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는 문화이다 보니 자녀가 결혼한다고 부모가 돈 걱정할 일이 없다. 도와준다고 해도 자식들이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라거나 ‘후진적 정치 행태’에 염증을 느낄 때 사람들이 “이민 가고 싶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나는 여러 번 들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으로 보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버젓이 벌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사람들 입에서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깨끗한 정치’란 없겠지만 정치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지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정치 피로감이 한국에 비해 훨씬 덜한 편이다.

2023년 중반 캐나다 온타리오주 총리인 더그 포드가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해마다 50만명 가까이 들어오는 캐나다 이민자의 절반이 온타리오주에 몰리니 주택난이 가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캐나다 정치인이 그린벨트 해제를 입에 올리는 것을 나로서는 처음 들었다. 토론토가 미어터진다 해도 그린벨트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상식에 비추어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수사나 감사가 반드시 뒤따른다. 더그 포드의 뜬금없는 그린벨트 해제 발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방경찰이 즉각 수사하겠다고 나왔고, ‘개발업자’가 정책 입안에 개입했다는 중간발표가 있었고, 온타리오주 관련 장관이 사퇴를 했고, 더그 포드 주총리는 정책을 공식 취소하고 사과를 했다. 장관이 물러나고 총리가 사과했으나 유권자들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런 일을 기억하며 투표한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정권이 교체된다. 사정기관의 신속한 수사나 감사도 좋아보이지만, 이곳에 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화는 투표를 통한 조용하지만 가차 없는 응징이다.

이민 초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캐나다 살기 좋아?”라고 물으면 “교육, 자연, 식료품 빼고 한국이 다 좋아”라고 답했었다. 지금도 캐나다의 좋은 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자연이다. 대도시인 토론토에 살면서도 좋은 자연을 일상적으로 접한다. 녹지와 공원이 많아서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공기가 맑고 쾌적하다. 교육과 자연환경은 여전히 좋지만(교육의 경우,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으나 수학능력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식료품 가격이 좋다는 말은 더는 하기 어렵게 생겼다. 특히 한국에 ‘비교우위’를 자랑하던 것이 육류였으나 지금은 가격이 너무 올라서 ‘고기가 좋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식료품 가격 상승이 물가 인상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정부가 규제에 나섰으나 가격 상승이 둔화되었을 뿐 내려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존중 같은 것은 선진국들이 갖춘 보편적인 문화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무슨 내용이든 간에 차별은 중범죄로 간주된다.

처벌에 관해서도 차별은 없다. 특히 공직자에 대해서는 아무리 힘 있는 세력이라고 해도 법을 어기면 가차 없는 처벌이 이루어진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뇌물을 수수해서 살아남는 공직자를 보지 못했다.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들은 서로를 견제한다. 그런 시스템에서는 어느 한 기관이 권력을 독점하거나 일방적으로 독주할 수가 없다. 이것은 캐나다가 잘한다기보다는 정상적인 나라라면 어디든 마찬가지이니 자랑할 거리가 못 된다.

앞에서 열거한 여러 좋은 점들 때문에 캐나다를 곧장 ‘살기 좋은 천국’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입시 지옥은 면했으나 젊은이들이 구직이나 내 집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낯선 사회에 어렵게 적응하고 자리 잡고 살아온 나 같은 이민자들은 ‘사는 재미’에 대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깊어진다. 20시간 운전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토론토에 살면서 아무리 한국 음식을 잘해 먹는다 한들 모국 음식은 늘 그립다. 한국의 대중문화나 책에 대한 갈증은 거의 해소(나는 영화 <서울의 봄>을 최근 토론토의 극장에 가서 관람했다)되었으나 음식에 관해서는 절절한 아쉬움이 여전하다. 모국을 바라보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장면은 부모 형제들이 모여 함께 김장을 하는 모습이다.

캐나다에서 산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살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가면 이제는 한국이 낯설다. “캐나다 살기 어때? 좋아?”라고 누가 물으면 요즘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디든 다 똑같지, 뭐.”

3년6개월 동안 ‘다른 삶-성우제의 경계인’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연재 끝>

▶성우제

[다른 삶]캐나다 생활 20년이 준 깨달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7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등 단행본 6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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