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들 스칠 때 나는 묵직하고 달큼한 향…‘하얀 연기’의 마법

2023.12.29 15:51 입력 2023.12.29 16:01 수정
조혜임

아라비안 라이프|오우드와 바쿠르

아랍의 공항에서 맡을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달큼한 향의 정체는 바로 오우드(침향)이다. 아열대 우림지대에서 자라는 침향나무의 수지인 오우드(왼쪽 사진)와 관련 제품은 아랍지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랍의 공항에서 맡을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달큼한 향의 정체는 바로 오우드(침향)이다. 아열대 우림지대에서 자라는 침향나무의 수지인 오우드(왼쪽 사진)와 관련 제품은 아랍지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라마다 고유한 향이 있다고 한다. 그 향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아랍의 공항에는 묵직하면서도 달큼한 향이 난다. 하얀 칸두라와 까만 아바야를 걸친 현지 사람들을 스치기라도 하면 그 향은 배가 되어 코끝을 간지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은 “엄마, 여기 사람들한테서는 왜 좋은 향이 나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향수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라기에는 이질적이고 좀 더 자연의 향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이 냄새에 대해 나는 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향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보기에도 어지러운 아랍어 간판에 번쩍번쩍한 인테리어, 그리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미소 짓고 있는 어느 매장 앞에 황금빛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 안에서 하얗고 기다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직원에게 다가가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물어보니 그는 투박하고 낮은 목소리로 “오우드(Oud·침향)”라고 대답했다. 뭐 할 때 쓰는지 물으니 이렇게 피워두면 온몸과 집 안에서 좋은 향이 난단다. 가까이서 맡아보니 아랍 사람들에게서 나는 바로 그 향이었다. ‘신기한데’라고 생각하며 가격을 묻자 그는 아주 작은 용기에 든 것이 무려 10만원이 넘는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Bye”를 외치고 돌아섰었다.

연일 50도에 육박하는 날씨를 견뎌야 하는 아랍의 여름에는 옷가지를 관리하는 것이 힘에 부치곤 한다. 차를 타기 위해 지하주차장을 걷는 그 1분여 만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1일 3샤워가 생활화되는데 그때마다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어야 하니 빨래는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가볍게 빨 수 있는 면 종류라면 세탁기에 휘리릭 돌려버릴 수 있지만 특별한 날 입고 싶어 산 실크 소재 등의 의류는 세탁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귀찮고 비싸다는 이유로 세탁을 미루며 옷장에 넣어두길 반복한 어느 날, 옷장 문을 열자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꿉꿉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아닌가! 향이 진하기로 으뜸인 인도의 버터 카레를 먹고 온 날, 제대로 냄새를 빼지 않고 대충 구겨 넣어둔 옷 한 벌이 악취의 원인이었다. 문제는 며칠에 걸쳐 옷장 안 모든 옷을 세탁하고 냄새 제거제를 뿌려대며 환기를 해도 옷장 안에 배어버린 그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언제나 말끔하고 반듯한 차림새인 현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눈이 부시게 하얀 칸두라는 늘 칼주름이 잡혀 있는 데다 지나갈 때마다 스치는 향긋한 냄새는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주부로서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궁금하던 찰나, 현지인들과의 언어 교환 모임에서 그 비결이 오우드와 바쿠르(Bakhoor·아랍식 전통 향료)를 잘 활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0도 육박하는 더위에도 현지인들이 말끔한 차림새 유지하는 비결
‘오우드’는 침향나무의 수지…오우드에 다른 재료 첨가한 게 바쿠르
이슬람의 역사와 함께하며 ‘검은 금’ 별명…소독·정신 안정 효과도

오우드는 아열대 우림지대에서 자라는 침향나무의 수지로, 나무가 상처를 입어 내부에 바이러스 및 세균이 침투했을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생성한 덩어리이다. 자연산 오우드는 수백년에 걸쳐 침착되고 숙성되어 어두운 흑갈색을 띠고 수천년 전부터 약재로 쓰이거나 종교의식에 활용되는 등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생산될 확률이 높지 않아 최근에는 나무에 직접 상처를 내어 바이러스를 주입해 만들어내고 있다. 천연 오우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인기가 많아 한정 판매되는 제품이 들어온다 하면 이를 사려 사람들이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선다. 아랍지역에서는 오우드에서 추출한 오일에 수지 조각을 숙성시켜 피우는데 이렇게 하면 향이 더 극대화되고 오래간다.

오우드와 이를 원료로 만든 천연 향료인 바쿠르를 태우는 모습. 빨래를 건조할 때 이렇게 피워놓으면 진한 향수보다 옷감의 향이 오래간다.

오우드와 이를 원료로 만든 천연 향료인 바쿠르를 태우는 모습. 빨래를 건조할 때 이렇게 피워놓으면 진한 향수보다 옷감의 향이 오래간다.

바쿠르는 수천년 전부터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사용해온 향료로, 오우드 가루에 개인의 취향이나 가정의 풍습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만든다. 레반트 지역의 부족이 곤충 피해를 막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설탕을 넣어 모양을 잡아 빚기도 하고 되다랗게 만들어 그릇에 담아 퍼서 쓰기도 한다. 에미라티(Emirati)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인들이 이를 직접 만들고 그 노하우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산으로 생각했다. 재스민, 샌들우드(백단향) 혹은 감귤류의 천연 오일을 넣어 배합하는데 그 독특한 향이 매혹적이라 최근에는 바쿠르의 향을 오마주한 합성 향수도 출시되고 있다.

아랍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남자들은 묵직한 향이 느껴지는 오우드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은 바쿠르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빨래를 건조할 때 이를 피워 옷감에 향을 입히거나 머리카락 등 온몸에 연기를 맞으면 그 냄새가 아주 진해 향수보다 오래간다고도 했다. 한 번씩 옷장 안에 피워두면 모든 옷에 좋은 향이 배고 악취도 사라진다니 나는 그길로 지난번에 봐두었던 매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다양한 바쿠르를 시향해볼 수 있었다. 천연 오일이 첨가되어 달콤한 향내가 나는 제품부터 묵직한 머스크 향까지 종류가 무척이나 많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 직원이 “오우드 오일에 숙성된 것도 시향해보실래요?”하며 수지 조각이 든 나무 케이스를 열어 코앞에 가져다주었다. “오우드는 남자들이 주로 쓰는 것 아닌가요?”하며 그 향을 코로 들이마시자마자 두 눈이 커다래지고 말았다.

평소에도 편백나무와 같은 천연향을 좋아하는 나는 오우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청량감에 순식간에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직원은 “이 제품이 우리 매장의 베스트”라며 작은 탄에 불을 붙이고 수지 조각을 위에 올렸다. 연기가 뿜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에 이끌려 아열대 우림지역 한가운데에서 불을 지피고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홀리듯 지갑을 열어 오우드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집에 도착해 곧장 오우드를 피우고 옷장 문을 열어 조심스레 넣어놓았다. 10분쯤 지나 문을 열자 향기로운 하얀 연기가 쏟아져 나왔고 그동안 괴롭게 했던 악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술과도 같은 효과에 매료되어 냄새가 강한 음식을 먹고 난 후나 외출하기 직전에 종종 오우드에 불을 붙였다. 신기한 것은 오우드를 태울 때 생기는 기다랗고 하얀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왜인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고민들이 옅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침향과 같은 강한 향은 후각 신경을 통해 뇌 변연계에 영향을 주면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어 화나고 흥분했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무엇 하나 쉽지 않고 낯설기만 했던 나의 아랍살이에서 오우드 조각을 피우며 멍하게 보내는 짧은 이 시간이 종종 쉼터가 되어주곤 했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에서의 삶을 견뎌야 했던 유목민들도 이 작은 조각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 오우드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가 공기 중 박테리아를 줄일 수도 있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인간이 불을 이용하여 향기가 나는 것을 태운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가운데 오우드는 의학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여겨져 값어치가 점점 높아졌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검은 금’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오우드가 특히나 중동에서 사랑받으며 이 지역 고유의 향이 된 데는 이슬람의 역사와 함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오우드를 ‘천국에서 발견된 물건’이라고 언급하였고 이에 무슬림들은 오우드로 몸을 소독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아랍지역 사람들은 기도 전이나 후에 오우드를 피우고,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결혼식 등 행사가 있을 때 환영의 의미를 담는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어 오우드와 함께 쓰는 레이어드 향수도 출시되는 등 아랍지역 화장품 산업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다. 오우드와 바쿠르는 아랍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하기 좋은 소재이며 호불호를 타지 않는 기분 좋은 선물이니 꼭 한번 활용해보기를 바란다. <연재 끝>



[다른 삶]아랍인들 스칠 때 나는 묵직하고 달큼한 향…‘하얀 연기’의 마법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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