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3개월…대화가 없으니 출구도 없다

2024.05.26 09:00 입력 2024.05.26 09:02 수정

의대 정원은 이달 말 확정될 듯

지난 5월 6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입원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지난 5월 6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입원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주간경향]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다고 했을 때 이 사태가 길어지면 어쩌나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됐고, 지금은 무력감이 가장 큽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여파로 인한 의료공백이 3개월을 넘긴 지난 5월 21일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현원(3058명)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건 지난 2월 6일. 2주 뒤인 2월 19일 전국 주요 수련병원의 대다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음 날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고 의사단체가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반발하는 뉘앙스도 ‘(정부에) 속았다’는 것이었다”며 “2020년 때와 달리 개원의들이 파업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공의들이 먼저 빠져나갔다. 초반부터 이번엔 의료공백이 길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그게 지금 현실이 됐다”고 했다.

■수술 지연·진료 차질···‘끝’ 안 보여 막막한 환자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들에선 수술·입원, 외래 진료량이 대폭 축소됐다. 정부는 “의료대란 수준의 혼란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진료공백’ 3개월간 환자들은 건강상의 피해를 겪고 불안을 안고 지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이탈 시점인 지난 2월 19일부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했다. 지난 5월 22일까지 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 누적건수는 736건(수술 지연 457건, 진료 차질 146건, 입원 지연 36건, 진료 거절 97건)이다.

지난 3개월간 정부가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하면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봤던 중등증(경증과 중증의 중간)·경증 환자들은 2차 종합병원으로 전원됐고, 환자들 스스로 다른 의료기관을 찾기도 했다. 상급종합병원부터 찾고 보는 환자 쏠림 현상은 개선 과제로 꼽힌다. 보건의료 위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의료이용 행태가 개선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다만 갑작스러운 진료환경 변화 앞에서 “난치성 희소질환 환자들, 그중에서도 이제 막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된 환자들은 더 어려움을 겪고”(진미향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대표) 있다. 진 대표는 지난 5월 20일 기자와 통화에서 “난치성 질환 환자들은 임상경험이 많은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존 환자들도 진료 지연이 좀 있지만, 기존 의사 선생님들과 일정을 조율해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데 신규 환자들은 길이 막힌 것 같다. 대형병원 진료·수술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거나, 중소병원을 찾아가면서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의·정 갈등을 지켜보며 진 대표는 “환자들은 막연히 바라만 보고 있으려니까 많이 답답하고 빨리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3개월 내내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사태를 빨리 해결하라고 같은 말만 반복해왔다”며 “이제는 여기서 어떤 해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적 갈등 조정 능력을 아예 상실해버린 게 아닌가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전공의 빈자리 메우는 간호사는 ‘업무 가중’

정부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난 2월 27일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전담간호사(진료지원인력 가운데 PA 간호사)들이 일부 의사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추계로 지난 4월 말 기준 1만명 이상의 PA(진료 보조) 간호사가 활동 중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8년 차 PA 간호사인 A씨는 지난 5월 21일 통화에서 “원래도 병원에서 PA 간호사들이 처치, 처방, 대리수술 등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했기 때문에 PA 간호사 없이는 병원이 안 굴러간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병원마다 간호사들에게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 아이디를 만들도록 하고 있는데, 의료공백 장기화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전담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하는 것을 제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 5월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날은 고연차 전공의들이 내년 전문의 자격취득 수련기간 확보를 위한 ‘복귀 시한’이었지만 복귀자는 소수에 그쳤다. 정효진 기자

지난 5월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날은 고연차 전공의들이 내년 전문의 자격취득 수련기간 확보를 위한 ‘복귀 시한’이었지만 복귀자는 소수에 그쳤다. 정효진 기자

A씨는 “업무 자체는 하던 일들이라 새롭지는 않지만 업무량이 그 이전보다 2~3배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했다. 그는 “병원 측에 보상을 요구하면 ‘지금 병원 경영이 어려워 당장 월급이 끊길 수 있다’는 말이 되돌아온다”고 했다. ‘전담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는 정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번 의료공백 상황에서 서둘러 추진된 것이다. A씨는 “시범사업 기간에 간호사가 의사 일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이 간호사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데, 법적인 보호장치는 미비한 상태”라고 했다.

미숙련 PA 간호사들이나 이번에 전담간호사로 전환된 일반 간호사들은 시범사업에서 정한 업무를 새롭게 익혀야 한다. 복지부는 대한간호협회와 함께 새 업무 분야별 이론·술기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A씨는 “신규 전담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해서 교육 대상자 범위가 좁고, 교육을 들었던 간호사들이 말하길 질적으로도 임상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이 부족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A씨는 “간호사들도 처우개선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고 파업도 했지만, 환자 곁을 온전히 떠나지는 않았다”며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대 증원은 찬성하지만, 정부가 현장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현실화하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3월 11일부터 전공의 대체인력으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공보의)를 상급종합병원들에 파견해왔다. 지난 5월 22일 기준 423명이 파견됐고, 23일부터 군의관 120명을 추가했다. 역시 전공의 업무를 추가로 맡은 의대 교수들의 피로가 쌓이고 있다. 이에 의대 교수들은 지난 4월 30일 이후 개별적으로 ‘주 1회 휴진’을 하고 있다. 군의관·공보의 파견 수요가 커진 배경이다. 다만 공보의 상당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라 교수를 대체하긴 어렵다. 한편 지역 보건소·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던 공보의들의 파견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하면서 해당 지역의 의료공백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정갈등 3개월…대화가 없으니 출구도 없다

■5월 말 내년 의대 정원 확정될 듯···‘의·정 대화’ 먼 길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5월 16일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이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건에 대해 각하·기각 결정을 하면서 정부의 내년도 의대 증원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5월 31일 대학별 2025학년도 대학 수시 모집 요강이 공고되면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이다. 2006년 이후 동결된 의대 정원 3058명은 19년 만에 깨진다.

정부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내년에 한해 늘어난 정원을 배분받은 32개 대학이 증원분의 50~100% 선에서 정원을 자율로 정하도록 허용했다. 각 대학 결정을 종합하면 내년 의대 총 입학정원은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대학 학내 의사결정기구에서 내년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반경 안이 부결되면서 막판까지 변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사건의 항고심 결정이 내려진 지난 5월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로비에 정부를 비판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김창길 기자

의료계가 의대 증원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사건의 항고심 결정이 내려진 지난 5월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로비에 정부를 비판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김창길 기자

의·정 갈등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료계 양측 모두 ‘대화’를 하자면서도 진전은 없다. 지난 4월 출범한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의대 증원을 포함한 지역·필수의료 강화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의사단체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5월 22일 의대 교수 단체, 대학의학회 등과 비공개 연석회의를 연 후 “의료계는 정부와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냈다. 정부도 “대화의 문은 늘 열려 있다”(조규홍 복지부 장관, 5월 23일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고 했다.

다만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의료계는 의대 증원 추진 중단을 요구하고, 정부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같은 비현실적인 조건은 받아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지난 5월 22일 총회를 열어 정부 보건의료 정책 자문과 관련 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견을 나눌 창구는 오히려 좁아졌다.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게 시급한데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전공의 수련·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행정처분 유연 적용 등 연일 유화책을 제시하며 복귀를 촉구했지만, 전공의들은 응하지 않았다. 100개 수련병원 전체 전공의 1만3000여명 중 지난 5월 20일 기준 출근자는 659명에 그쳤다. 전공의 없이 비상진료체계로 의료공백을 최소화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복지부는 지난 5월 22일 브리핑에서 “의료현장의 신속한 불편 해소를 위해 환자단체와의 상담창구를 열겠다”고 했다. 향후 11개 환자단체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담당관을 지정하고 개별 환자단체들과 주기적으로 간담회를 열 방침이다.



“의사도 의료위기에 책임…정부가 결자해지해야”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인터뷰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0일까지 시민들이 원하는 의료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한 원고를 공모했다. 이어 5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의사 수 추계 연구를 공모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점에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안’을 제시하기 위한 기초자료들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서울대 비대위를 이끄는 3기 비대위원장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 5월 21일 기자와 통화에서 “올바른 의료개혁이 무엇인지를 먼저 질문했어야 한다. 정부의 의료개혁안은 현장 의사들과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이 나오는 데 근거가 된 3개 연구는 2018년, 2019년 의료이용량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시점에서의 의료이용 행태가 바람직한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고 봤다”며 “MRI(자기공명영상) 건강보험 급여 보장 확대(2018년 10월)나 실손보험 활성화로 폭증한 의료이용 행태를 의료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과학적 의사 수 추계 연구를 위해, 우리가 원하는 의료시스템을 먼저 논의해야 하기에 선행해 시민 공모를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이 5월 16일 의대 교수, 의대생, 수험생 등이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건에 대해 각하·기각 결정했다. 의료계는 대법원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내년도 대학 입학정원 모집요강 발표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강 비대위원장은 “서울대 비대위도 같은 입장”이라며 다만 “2025학년도의 입학 정원 규모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안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서울대 비대위는 ‘과학적 의사 수 추계 연구’ 공모의 결과는 내년 2월쯤 최종 공개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에 관한 사회적 논의에 자료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 재논의가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이상적으로는 일본, 미국 등에서 하는 것처럼 의대 정원 문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논의 끝에 최소 2년에서 5년 정도 앞서서 발표해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지난 5월 14일 시민 원고 공모 수상작 발표 자리에서 낭독한 비대위 성명서에서 의료계의 ‘책임’을 언급하고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의·정 갈등 상황이 부각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드물었다. 강 비대위원장은 “그간 현장 의사들은 환자들을 회송(전원)해줄 의료기관이 점점 없어지고, 멀쩡히 일하던 동료가 떠나는 일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체감을 했지만, 그 바탕의 근본적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미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 데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서울대 비대위는 시민(환자)들과 의료계, 정부가 의료개혁을 논의하는 상설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의료계 내부에선 환자·소비자단체가 의료개혁 논의체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강 위원장은 “의사들과 환자들이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선입견이 굉장히 심한 것 같다”며 “서로가 만나서 대화해보면 생각이 다르지 않은 부분들, 양측 주장이 서로 수용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했다.

의료공백 장기화와 관련해 강 비대위원장은 “의료공백 피해가 발생한 원인이 정부에 있으므로 정부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은 환자를 열심히 보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전공의들이 떠나 있는 이유는 절망해서다. 정부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강 위원장은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로 오는 8월 31일 사직을 예고한 바 있다. 그는 “8월 31일이 저의 희망 사직일인데, 그 전에 문제가 좀 해결됐으면 좋겠다. 저는 사직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전공의들과 같은 생각이다. 국민 건강에 해가 될 것 같은 정책을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항의의 의미”라며 “정부가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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