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도와 상상력

2012.06.04 21:37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세계 일등을 자랑하는 대형 교회 큰 목사님이 사주인 신문에 ‘석가탄신일을 맞이한 불교계와 불자들께 축하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드디어 기독교도 다른 종교에 화해의 손길을 뻗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광고를 보는데 어이쿠, 이건 꺾기도(모든 것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기술)! 그중에서도 광고를 이용한 축꺾(축하꺾기) 아니던가!

[별별시선]꺾기도와 상상력

꺾기도를 시전한 주체는 모 교회 담임목사와 교역자, 당회원, 성도 일동이다. 제목만 보면 이웃 종교의 경축일을 축하해 주는 화해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그런데 본문을 조금만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꺾인다. 석가탄신일은 ‘이웃집의 아름다운 경사’이고, 따라서 세계인들이 지키는 성탄절과 차이가 있다며 포문을 연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국민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 구제 기관의 70% 이상이 기독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한다. 세상에.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고, 자기를 높이기보다는 낮아지라고 했는데 이들은 성경의 말씀도 대놓고 꺾는다.

하이라이트는 연등행사 전기료에 대한 질문이다. 올해부터 석가탄신일 연등행사를 정부 주도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행사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되는데, 이를 거부하는 국민들 소송이 있을 때 정부는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정신이 혼미해진 다람쥐~. 축하하는 척하며 깨알같이 꺾는다.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가 국가의 세금에 그렇게 민감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민망하다.

불교도 지지 않는다. 축하꺾기도에 맞서 스님으로 구성된 쌍둥사를 보냈다. 마치 쌍둥사처럼 비슷해 보이는 여러 스님들이 관광호텔 스위트룸에 모여 밤새 도박을 하고, 맥주도 마른 오징어 안주에 드시고, 담배까지 태우셨다. 문제가 드러나자 도박은 간단한 놀이, 술은 곡차, 담배는 연초로 꺾어주신다.

축하하면서 전기료 내 놓으라는 축하꺾기와 산사를 나와 관광호텔에서 밤을 새우며 도박과 술과 담배로 정진하시는 정진꺾기는 물질주의 탐욕에 빠져든 한국 종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들은 종교를 꺾어버린다. 아니, 그 반대다. 종교가 젊은 세대를 뜬금없이 꺾어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축하꺾기와 정진꺾기에 치명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우리는 어디서 치유를 받아야 할까? 누구에게는 불온하거나 불경할지도 모를 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세인트 영맨>이라는 일본만화다. 2008년 시작된 만화로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는데, 무려 5년 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세기 말을 무사히 넘긴 예수와 붓다, 붓다와 예수가 서로 절친이 되어 하계(지상)에 휴가를 와서 함께 산다는 이야기다. 기독교도이건, 불교도이건 그야말로 초대박급 신성모독일까?

상상력은 전복적이지만, 근본을 뒤집지 않는다. 어떤 개그라도 그 종교의 본질에서 나온다. 예컨대 비 오는 날 극장에 간 붓다와 예수. 붓다는 스포일러를 광적으로 싫어해 예수가 사온 팸플릿을 덮어버린다. 그러자 예수는 스포일러를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인 즉, 예수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세계의 종말을 대놓고 스포일러하고, 책으로도 내버렸기 때문이란다. 예수는 붓다에게 “너는 성서를 읽지 않는 게 좋아”라고 충고한다. 영화 스포일러를 종말에 대한 성서의 예언으로까지 연결하는 탁월한 조크다.

이어 붓다가 자신의 전기영화를 꼬박꼬박 체크한다고 하자, 예수는 보기는 봐야 되겠지만 못 본다고 말한다. “나는 고어라거나…피나고 아픈 건 진짜 못 봐서…”라며, 속으로 ‘<패션오브크라이스트>는 예고편만 봐도 기절이야…’라고 말한다. 골고다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사랑의 예수답다. 이렇듯 <세인트 영맨>은 예수의 가르침을 꺾지 않는다. 오히려 그대로 정확하게 전하려고 한다. 단지 그 안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문제는 예수와 붓다가 친구라는 상상력이다. 전복적 상상력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 자비의 종교인 불교. 두 종교가 친구가 되어 상대방을 인정한다면, 사랑과 자비가 상호작용해서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안해질 것이다. 더불어 지난 5월에 있었던 광고를 통한 축하꺾기나 호텔에서 벌어진 정진꺾기와 같은 공격에 대한 내상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와 붓다, 붓다와 예수가 절친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상상력을 권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 상상력이 못마땅한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타인에 대한 사랑도 배려도 구제에 대한 숨김도 없이 모든 걸 쏟아 놓은 광고를 보며 즐거워하셨을까? 부처님이 산사에서 내려와 밤새 도박을 하다 새벽 예불에 참석한 스님들의 예불을 받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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