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털붕괴 5월아

2012.05.28 21:05
김종휘 | ○○은 대학연구소 2소장

횡설 좀 할게요. 바야흐로 ‘멘붕’(멘털 붕괴) 시즌이잖아요. 눈으로 듣는 ‘나가수’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귀로 보는 <나꼼수>에 빵 터지는 날도 있지만 그때뿐, 이유나 계기가 뭐든 일순간 총체적 탈감각이나 초감각의 무중력 세계로 넘어가서 ‘나멘붕’ 한 뒤로는 예전의 ‘정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한 채 “총 맞는 것처럼” 얼떨떨하게 지내는 분들, 애써 아닌 척하거나 자각 못할 뿐, 살펴보니 주변에 많더군요. 이참에 멘붕인지 아닌지 애매한 것 같다는 분들을 위해 정하지요. 심신에 다음 증상이 있으면 멘붕인 겁니다.

1. 사태가 심각하다 판단해서 수습하려 애쓸수록 수습이 더 안되면서 헛물만 꾸역꾸역 들이키는 허우적 증상. 2. 원인 제공자나 책임자를 가려 분노를 작렬했더니 분노한 자신만 점점 더 피폐해지면서 소중한 지인에게 사소한 걸로 성내는 분풀이 증상. 3. 자기 연민의 멜랑콜리에 안겨 은밀한 사적 감정들의 경계를 넘나드느라 표 나게 누추해지는데도 본인만 그걸 어여삐 여기는 비비적 증상. 이 중 하나 이상이면 멘붕 시즌1 경과 중이고요, 셋 다면 멘붕 시즌2 개봉박두이니 기대하세요.

[별별시선]멘털붕괴 5월아

시즌1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 끝인가 싶어 엉덩이 들다가 화장실 갈 짬도 없이 속편 시즌2가 연신 상영되는 통에 털썩 주저앉아본 분이면 정말 다행이에요. 멘붕 시즌1만 겪고 그 상태에 머물다가 좀비가 될지 모르거든요. 죽지도 살지도 않아서 한번 물고 물리다 다 같이 좀비가 되느니 어서 멘붕 시즌2로 가는 게 낫죠. 어쨌든 멘붕은 붕괴될 멘털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 멘털이 붕괴된 게 속상하고 어이없고 통절해도 어쩌겠어요. 붕괴된 거잖아요. 그럼 붕괴 이후를, 붕괴 너머로 견디며 가야지요.

멘붕을 모르거나 피해갈 수 있던 시절에는 ‘창조적 파괴’ 같은 말을 쓸 수 있었겠다 싶어요. 팍팍 창조하다 보니 속속 파괴도 일어나 일대 정리가 되더라는 선조들 경험담을 현대에 되살려 우리 시대엔 뭘 파괴해야 뭐가 창조되려나 고심하다가, 멘붕 시즌을 맞으면서는 아주 다른 차원이 열린 게 아닌가 해요. 이를테면 멘붕 시즌2에 주저앉은 분들은 이런 상태를 알게 되는 거죠. 이 앎은 무념정진하고 번뜩 깨닫는 거라기 보단 심신에 탈이 연달아 나더니 그냥 바꿈이 벌어지는 변태의 체험 같은 거죠.

1. 그 사태, 그거 심각한 거 아니었구나, 수습하지 않아야 제자릴 찾아가는 그런 거구나 하는. 2. 그 분노, 그거 내 투사였고 짜증이었구나, 내가 당신을 추구하다가 좌절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3. 그 연민, 그거 욕망할 거 욕망하고 미안해할 거 미안해하지 못해서 빚어진 망조로구나 하는. 이런 앎은 멘붕 시즌1에서 내쳐 시즌2까지 눅진거리게 견뎌본 뒤 시즌2 엔딩 크레디트까지 가본 분들의 표정과 발걸음에게서 나오겠지요. 그러느라 오줌보 참다가 멘붕 입구 그곳으로 총총 출구한 뒤 볼일 보시고 조용하게 다른 멘털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의의로 많은 평범한 사람들 말이에요.

이렇듯 예전의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음을 다행이자 축복으로 느끼면서 당장의 ‘비정상생활’을 한껏 누리고자 돋아난 새로운 멘털이 나의 온 감각들과 하루하루 피드백하는 시간을 자꾸 늘려보는 것. 그렇게 올여름을 맞이하는 것.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길 몹시 바라는 요즘이네요. 이 더운 5월은 통합진보당만의, 바보 노무현만의, 부처님오신날만의 멘붕이 아니고 여러 사정으로 멘붕 시즌을 통과하고 있는 여러분 각자의 멘붕 리얼리티잖아요. 아무쪼록 ‘나멘붕’ 하시는 분들, 시즌2 너머까지 여름 복판 땡볕으로 같이 가 보시지요.

저기 어딘가에 다른 멘털의 청년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아예 멘붕 시즌2 너머의 사회에서 인생 첫 출발점을 찍으려는 운명인 겐지 소싯적부터 체계적으로 멘붕을 겪으며 자라온 이 시대의 청년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네요. 부모 세대가 망쳐버린 ‘명품’ 짝퉁 도시들 복판에서 “좋아요 인천 축제”(5월8일자 “좋아요 인천 축제”)를 만드는 자식 세대의 청년들은 멘털이 퍽 다르지요. 사시사철이 붕괴돼서 예전의 ‘정상생활’로는 도무지 수습이 안되는 아열대 기후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비정상’ 본능과 감각의 싹수들이 이들 청년에게 무진장 있는 것 같네요. 게다가 이 자질들의 겉은 부모들이 낳아준 거잖아요.

구름 위로 비상할 듯 잘나가다 갑자기 바닥에 곤두박질친 후배가 부산 출장길을 따라와 말하네요. 엄마가 한사코 말리던 그 일을 20대 내내 하다 30을 넘긴 최근 멘붕이 와서 털어놓으니 엄마가 이러셨대요. “해가 네 머리 꼭대기에 있었으니까 암것도 못 봤지, 해가 져야 네가 널 보지, 너 하던 그 일 이제부턴 잘하렴.” 눈부신 태양을 노려보던 후배는 아마도 땅에 누운 자신의 가장 긴 그림자를 본 거겠지요. 바야흐로 멘붕의 5월, 이 모자처럼 무르익길 바라면서 올여름이 정말 각별하면 좋겠어요. 이상 수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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