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시대의 영웅이야기

2012.08.01 21:18
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일련의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오늘날 우리는 어디를 가나 비통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안산에서는 중무장을 한 수백명의 용역깡패들이 부분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때려잡았지만 경찰은 수수방관이었고, 부당회계가 의심되는 가운데 정리해고가 감행된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을 공권력은 ‘우수사례’로 꼽았다. 용산 참사로 죽은 철거민들의 한은 여전히 풀리지 못한 채 남겨졌고, 참사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여전히 철창 속에 갇혀 있다.

[2030콘서트]디스토피아 시대의 영웅이야기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현대차는 개정된 파견법에 따라 정규직 고용의무를 지지 않기 위해 2년 미만 노동자를 모조리 계약해지하고는 기간제로 재배치했다. 이는 법망을 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회사가 잘나가도 노동자들의 삶의 권리는 죽어도 보장해줄 수 없다는 막장 엄포이기도 하다.

며칠 전 친구들과 올 대선에서 누굴 찍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안철수가 대안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안철수를 찍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상징적 존재로서의 ‘박정희’를 ‘다시 소환’하려는 것을 막아야 하고, 더군다나 좌파에게 딱히 대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소위 진보진영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노라면 어떤 정치적 대안도 내놓기 힘든 상황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 총선 이후 진보신당은 제 앞길 살피는 데에도 버거워하고 있고, 통합진보당은 일련의 선거 부정 사태들과 정파 간 갈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문제에는 눈길 돌릴 여유도 없다.

섣부른 예단일 순 있지만 만일 이런 식의 구도가 대선까지 지속된다면 한국의 정치질서는 점점 더 양당제 구도로 흘러갈 것이고, 사람들은 새누리당식 보수주의와 민주당식 자유주의 외에는 어떠한 정치적 대안도 찾기 힘들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통진당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며, 대안세력은커녕 가장 대책 없는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진보신당은 자력으로는 결코 선거에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가 제3의 세력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민주당보다 보수적이면 보수적이었지 구조적 모순에 대한 혜안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최악과 차악, 양자택일의 문제가 돼버리는 것이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현실은 매우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그리스의 위기 국면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폭탄을 안고 있고, 스페인과 캐나다, 파라과이 등에서는 연일 신자유주의적 조치들, 긴축재정에 맞선 대규모의 민중 투쟁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원전에 맞선 대규모 시위가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엊그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가계부채 부실에 따른 위기상황이 단기간 내 급속히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위기가 현실화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양산되고 서민경제 기반이 붕괴돼 사회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정권 초기부터 이른바 ‘MB노믹스’의 상징이었던 산업은행 강만수 회장은 최근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갈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경제계의 수장들이 절망적인 수사를 늘어놓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오늘날 세계 경제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다수 민중들에게 점점 더 야만적인 삶이 증폭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필연적 귀결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처럼 테크노크라트의 ‘합리적 통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어떤 관료 개인의 통치를 통해 절망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점점 더 그런 신사적 미덕의 통치, 정치 관료들의 합리성에 막연한 기대를 보낼수록 이 체제 자체의 구조적 대안을 외치는 정치는 실종되고 말 거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역량을 믿는 대신 소수의 영웅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치 저 괴물 같은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좀비처럼 묘사되는 시민들이 어서 빨리 영웅 배트맨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배트맨이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감옥을 탈출할 때조차 투옥자들은 영웅적 위대함을 선망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남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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