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없는 세상, 기대와 현실

2012.08.01 21:19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어금니를 치료하느라 지난 열흘간 치과에 다녔다. 그 사이에 치아 X레이 사진을 다섯번이나 찍었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이유없이 감기에 걸린 듯 목이 잠기고 몸이 무거웠다. 화학물질이나 곰팡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몸은 그 미량의 방사능도 견디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치과에서 X선 사진을 찍을 때 쬐는 방사능의 양은 최대 0.01밀리시버트라고 한다. 치과의사들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그게 반드시 필요하고, 미량이므로 인체에 해가 없다고 말한다. 며칠 동안 내가 이를 치료받으면서 쬔 방사능은 0.05밀리시버트를 넘지 않는다. 국제기구나 우리 정부에서 권장하는 일반인 연간 허용치 1밀리시버트의 5%이다. 문제는 이걸 1년에 걸쳐서 조금씩 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쬐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녹색세상]핵없는 세상, 기대와 현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몇 달 전 예일대학 의사들이 치아 X레이와 뇌종양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이상 치아 전체의 X레이를 찍는 사람은 뇌종양에 걸릴 확률이 1.4~1.9배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10살 이하 아이들은 5배나 높아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를 치료받으러 가서 치아 X레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X선 사진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치과에서 방사능에 쪼이지 않으려면 이를 잘 관리해서 치과에 가지 않으면 된다. 사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개인의 의지와 선택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치과보다 훨씬 많은 방사능이 나오는 원자력발전소는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고리원전에서 고장과 작은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영광원전이 다시 고장으로 멈춰섰지만, 그리고 언제 또 어떤 사고가 일어나 방사능이 날아올지 모르지만 20여개의 원전은 계속 돌아간다.

원전을 내 힘으로 멈출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념하고 살아갈 수는 없기에, 며칠 전 원전에 대항하기 위한 아주 낮은 수준의 선택을 실행에 옮겼다. 원자력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태양에너지만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이로써 전기 자급을 실현한 셈인데 그게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태양전지판, 전기를 저장하는 축전지, 직류를 교류로 바꿔주는 변환기를 서로 연결해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장치의 발전용량은 약 5㎾다. 축전지의 용량은 이보다 조금 많다. 전기가 1년에 약 6000㎾h 나온다. 이걸로 온수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난방까지 하게 된다. 집도 난방을 최소로 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수리했다. 원자력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용은 적잖이 들었다. 1300만원가량 투입되었는데, 모두 은행에서 빌렸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해서는 설치비용이 크게 낮아졌다. 그때 했더라면 두 배 이상 들었을 것이다. 빚이 꽤 늘어났지만 전기요금을 내지 않게 되니 계산을 해보면 크게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1년에 6000㎾h의 전기를 사용하면 전기요금으로 나가는 돈이 연간 145만원에 달한다. 이자율을 6%로 하고 간단한 경제성 분석 공식을 이용해 계산하면 13년 후에는 투자비를 다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치는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으니 긴 시간표 속에서는 상당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며칠 전에 ‘핵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진보당 국회의원이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의회에 나가 원자력을 없애겠다는 아주 높은 수준의 선택을 했지만 예상밖의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그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더불어 반원전운동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을 것 같다. 높은 곳에 기대를 걸면 실망도 더 커지는 법이다. 그러나 낮은 수준의 원자력 전기 벗어나기를 선택하면 실망할 일도 없다. 전기가 99% 이상의 신뢰도로 20년 이상 계속 생산될 것이니까. 그가 원하는 ‘핵없는 세상’은 낮은 곳에서 이런 신뢰할 만한 선택들이 쌓여가야 가능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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