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질문

2014.01.13 20:58
김민서 | 소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섯가지의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대학, 취업, 결혼, 첫째 아이의 출산과 둘째 아이 계획 여부에 대한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명절날 친척들에게 받게 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다섯가지 질문은 우리가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현재 우리 부부가 직면한 질문은 바로 네 번째이다. 첫째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

[별별시선]네 번째 질문

나와 남편은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눠왔다. 우리 모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선 머뭇거린다. 그것이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아니면 다음 달이 될지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모른다. 그 이유는 나와 남편이 아직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부모라는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드물겠지만, 우리는 좀 더 확실한 안전판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남편은 요즘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뉴스에서 흉악 범죄 사건이나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는 학교 폭력 사건이 오르내릴 때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더 복잡하다. 자아를 잃을까봐 두렵기도 하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 청사진을 그릴 수가 없다. 특히 TV에서 아이의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학부모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머리가 멍해진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종교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걸까?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친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를 낳는 일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다고. 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네가 정말 이것을 원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우리 부부는 아직 확신이 없다. 생각도 너무 많다. 나와 남편은 머리로 납득을 해야 행동하는 성격들이다. 물론 생각은 그만하고 그냥 움직이라는 격언도 있다. 그러나 생각 없이 행동하기엔, 이 일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달렸다. 그것도 우리 아이의 인생이.

결혼하고서 친정엄마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때는 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지.’ 어머니 세대는 질문이 없었던 세대다. 되도록 빨리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곧장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는 되도록 아들이어야 했다. 거기에 의문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바 선택의 시대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의문해볼 시간이 있다. 우리 부부는 요즘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새로운 토론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하고 해답을 얻기 전까지는 아이를 가지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 나이쯤 됐으면 가져야 하니까’라거나 ‘육아의 행복은 어떤 행복에도 비유할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말년에 아이가 없으면 고독하니까’라는 이유는 우리 부부에겐 부모가 되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남편과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있다. 부부 요리사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남편은 마흔이 넘었고 부인은 서른여덟이다. 그 부부는 최근에 첫 딸을 낳았다. 솔직히 영원히 아이를 갖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부부였다. 특히 팔뚝에 긴 문신을 한 남편은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보헤미안의 이미지를 풍겼다. 오랜만에 카페에 갔을 때 아내분은 산후조리를 하느라 남편분이 홀로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산모와 아이의 안부를 묻자 그분은 조용히 아이패드를 들고 와 딸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우리가 100여장이 넘는 아이의 사진을 다 볼 때까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어쩌면 카페 주인의 미소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원히 자유로울 것 같았던 남자를, 잘 알지 못하는 손님에게 딸아이의 사진 100여장을 보여주는 딸바보로 만드는 힘.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그런 마법 같은 힘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아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을 주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런 한 줄기 빛 같은 명백한 문장이나 그림 한 장이 가슴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 엄마가 널 정말 많이 기다렸다고, 너는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한 인생의 해답이자 새로운 출발이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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