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2015.04.05 21:05 입력 2015.04.05 21:28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과학으로 검증되지 않은 무슨 무슨 요법으로 암을 고쳤다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에서 나는 열매나 꽃이나 풀과 설탕을 섞어서 발효시킨 효소를 마시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그런 유행들 말이다. 분명 내가 보기에 설탕물인데, 그게 정말 좋다면 효소에서 추출한 신약이 나왔겠지. 특히 고치기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는 그런 종류는 어떤 이름을 붙이고, 믿을 만한 누구의 증언이 있더라도 믿지 않는다. 반대로 현대 의학은 신뢰한다.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약이나 의료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 수많은 반복실험을 통해 오류를 줄이는 과정을 신뢰한다.

[별별시선]난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알고 보니 우리 민족이 전 세계를 지배했다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듣고 있으면 대륙을 지배하는 조상들의 호연지기가 나에게도 이어질 것 같지만, 그런 기분만으로 역사라는 학문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정확하게 출처도 모르는 연구보다는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된 역사의 진실을 신뢰한다.

게시판에 등장하는 ‘충격’류의 음모론도 믿지 않는다. 음모론은 불안과 분노를 자극한다.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정적 고리가 오류인 경우가 많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듯한 음모론이 계속 돌아다닐까 안타깝기는 하지만, 음모론을 퍼 나르는 것만으로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한두 가지 정황을 엮어 음모를 주장하는 것보다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서다.

불신과 신뢰의 차이는 상식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느냐에 있다. 우리 사회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시스템은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차를 운전할 때 신호를 지키고, 최고속도를 지키며, 통행방향을 지키는 것이 모두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것이라 믿고 우리는 사회생활을 한다.

자, 이제 곧 1년이 되는 세월호 사고는 어떠했나? 난 세월호 침몰에 어떤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의 실소유자가 국정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마침 잠수함이 지나가고 있었다고도 믿지 않는다. 해양경찰이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는 건 더더욱 믿을 수 없다. 그런 음모론은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세월호 침몰은 교통사고다. 교통사고인데, 시스템이 부패와 무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럴듯한 음모론을 믿어주고 싶지만, 밝혀진 내용으로만 봐도 총체적 부패와 무능의 집약이니 치밀해야 할 뭔가를 조작할 실력도 없어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를 봐도, 무언가를 조작하는 이들은 훨씬 더 치밀하고, 영특하며, 능력이 있다. 똑같은 무게로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허공에 돈을 뿌리고, 무기중개업자에게 사기나 당하는 수준의 정부가 음모론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았다는 것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이니 믿는다.

또 세월호가 아니다. 아직 세월호다. 세월호가 침몰한 건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고,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고, 심지어 그 모습이 TV로 비친 그날, 대통령은 뒤늦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정부는 사고 초기 입체적인 구조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줄곧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대응이 엉망이었다. 원인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모든 게 유병언 때문이다, 가 아니다. 그건 박근혜 퇴진하라, 정도로 무책임하다.

낡은 배의 개조는 적합했는지, 평형수를 뺐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운항이 가능했는지, 왜 선원들은 승객들을 구하지 않고 먼저 도주했는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 규명은 계속 진행 중이라 치자. 그러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은 정비되었는가? 연안을 운항하는 배들의 안전을 점검할 수 있는 방안, 바다에서 조난이 벌어지면 누가 출동하고, 어떻게 구조가 이루어지고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믿을 만한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말이다. 수백명이 바다에서 죽었는데, 무려 1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하나 없고 조롱만 있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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