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모

2015.04.12 20:42 입력 2015.04.12 20:47 수정
정지은 | 문화평론가

영국 미들랜드 버밍엄, 주택가 한복판에 소박하지만 잘 가꿔진 공원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원은 세상을 떠난 발달 장애 아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메모리얼 파크’다. 이 공원에 가장 많은 것은 누군가의 이름들이다.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 인형들이 놓인 수로의 맑은 물에는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가득하다. 갖다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싱싱한 꽃다발과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들도 곳곳에 보인다. 풀숲 중간중간에는 아이의 사진과 아이를 그리워하는 편지가 놓여 있기도 하다. 공원은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고 편안하다. 이곳은 영국 중부의 대표적인 어린이 전문 호스피스 기관인 에이콘(Acorns)에서 운영하는 공원이다. 에이콘은 기관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발달 장애를 갖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해 누구에게나 이런 추모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공원은 기관 뒤쪽에 있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이용하고 방문하는 것만큼은 언제든 자유롭게 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곳만도 아니다. 공원은 에이콘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시설과 정원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발달 장애 아이들을 위해 특수 제작된 놀이기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기관을 이용하는 아이들도 공원을 자주 찾는다. 생전에 특별히 좋아했던 공간이 있는 아이라면 그곳을 추모 공간으로 삼는 가족들도 있다고 한다. 변변한 추모공간은 고사하고, 노란 리본을 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달라 한숨이 나온다.

[별별시선]어떤 추모

민간 기관인 에이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망 신고와 같은 행정 처리도 꼼꼼히 챙긴다. 가족들이 충분하게 슬픔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그만큼 아이를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이자 기관의 사명 중 하나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아이의 생일이나 기일에 사별 가족을 방문하는 사후 서비스까지 잊지 않는다. 지역 사회의 구성원인 가족을 끝까지 챙긴다는 얘기다.

에이콘이 특수한 사례도 아니었다. 영국의 모든 지원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잘못된 문은 없다(NO WRONG DOOR POLICY)’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최우선에 놓고,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기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이의 자격요건을 따지는 대신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며, 이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약자인가’라는 원칙이다. 개별 기관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라면, 다른 기관에 연락하고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은 물론이다.

세월호 희생 학생 앞으로 “주민증 신청하라”는 고지서를 보낸 한국의 관공서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이야기 아닌가. 지난 토요일(11일), 경찰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집회에서 캡사이신(최루액)을 발포했다고 한다. 노란 상의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히틀러의 생일에 그를 기념하고 시가행진을 벌인다는 독일에서도 네오 나치들에게 캡사이신을 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국민들을 이렇게 대하는 국가는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라는 상실의 5단계에 비춰봐도 한국 사회는 아직 2단계에 멈춰 있는 셈이다. 다른 날도 아닌 4월16일에 해외 순방을 떠나는 대통령과 ‘4월의 어느 멋진 날에’ 콘서트를 열려다 부랴부랴 취소한 국회 사무처가 있는 한 우리는 2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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