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나서야 할 때다

2015.07.03 21:49 입력 2015.07.03 21:54 수정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사유와 성찰]국정원이 나서야 할 때다

권력을 쥔 자들의 무책임이 도를 넘고 있다. 이 혼란상을 다스릴 책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혼란의 해결 주체가 아니라 원인이 되고 말았다.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위헌적 요소를 담았다며 거부권을 행사해놓고는 집권당 원내대표를 갈아치우려 덤비면서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정안을 재의에 부침으로써 입법부 수장답게 처신했지만, 그것이 불편했는지 정 의장이 초청한 외국 국회의장들의 대통령 접견에 초청 당사자를 빼는 꼴불견마저 벌어졌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국정 운영에 편승한 자들의 무책임한 언행은 일일이 비판하기도 어렵다. 차라리 양심적인 길을 택한 이들을 칭찬하는 것이 낫다. 2013년에 기초연금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한 끝에 재임 6개월 만에 소신에 따라 사퇴한 박 정권의 첫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 정치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친박’ 인사인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이 선상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정부 방침을 비판한 일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내국인 출입 허용은 정부가 크루즈법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충돌하기도 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자기 지역에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함 사장은 강원랜드는 석탄산업 폐쇄로 무너진 지역경제를 살리는 명분이 있었지만 선상 카지노는 명분이 없다고 일갈했다. 또 라스베이거스 등 세계적인 도박 중심지도 카지노만으로 수익 확보가 어려워 종합리조트로 탈바꿈하는 국제적 추세를 지적하는 등 정직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주장이 자신이 경영을 맡은 강원랜드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발언 내용의 옳고 그름이 중요하며, 현 정권 인사 중에 이만큼이나마 책임 있게 발언하는 경우도 드물다.

무책임의 고수는 역시 검찰이다. 엊그제 ‘성완종 리스트’의 김기춘, 허태열, 홍문종 등 ‘친박’ 6인을 계좌추적도 없이 무혐의 처리하기도 했지만, 세월호 수색작업에 헌신한 민간 잠수사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공우영 잠수사를 수색작업 중에 사망한 이광욱 잠수사의 자격 심사나 사전 교육 등을 소홀히 했다며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9개월 넘게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공 잠수사의 동료들은 그가 해경의 통제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웠고, 그저 해경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이었다고 증언한다. 책임 소재가 해경인지 일개 민간 잠수사인지는 상식의 문제일 터인데, 이 일에 대해 해경은 검찰 조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보다 못해 지난 5월28일 고 이광욱씨의 유가족이 해경을 고발했다. 언론인터뷰에 응한 고인의 동생 이승철씨는 함께 목숨 걸고 구조작업을 한 공 잠수사가 살인범으로 몰릴까봐 고발했다고 밝힌다. 이승철씨는 사고 당시 구조 현장에 의사도 감압 시설도 없었으며 심지어 보조 공기통도 없어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무책임의 절정은 지난달 7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대책을 발표하던 기자회견장에서 터졌다. ‘뉴스타파’의 지난달 18일 보도 영상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회견 도중 문 장관이 누군가에게 전달받아 살펴본 후 넘겨준 쪽지를 그대로 읽는다. 카메라 렌즈가 확대한 메모에는 “단순히 경유한 18개 의료기관은 감염 우려가 없는 병원입니다. 병원 이용에 차질이 없으니 이 점 감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BH 요청”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BH’는 청와대이다.

불투명한 대처를 일삼다가 결국 백기를 들고 메르스 환자와 관련된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환자가 경유한 병원이 안전하다고 우기는 일은 제정신인지 의심해야 마땅할 발언이다. 실제로 다음날 18개 경유 병원 중 네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뉴스타파’는 청와대의 요청 메모를 작성한 이를 확인하고자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통화했지만, 최 수석은 메모에 대해 모른다고 단언했다. 청와대 요청이라면 꼭두각시처럼 읽는 부총리와 주무 장관도 한심하지만, 대관절 이 메모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대통령 주변이 수상하고 위태롭다. 아무래도 대통령 보호를 위해 국정원, 국군 사이버사령부, 기무사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선거개입으로 대통령을 당선시켰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비밀 정보기관들답게 끝까지 책임지고 행동해야 할 것 아닌가. 이 중대 사태를 청와대 내부감찰 부서나 ‘검찰 얼라’들에게 맡길 수 없다. 검찰 출신 황교안 신임 총리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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