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와 ‘방어적 비관주의’

2015.06.19 20:46 입력 2015.06.19 21:11 수정
김찬호|성공회대 초빙 교수

20년 전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현장을 취재한 어느 일본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사고 직후 많은 사람들이 부러진 다리의 양쪽 난간까지 몰려와 아래쪽의 수습 작업을 구경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아찔했다고 한다. 교량 전체가 위험한 상태고 그 난간은 방금 무너진 구조물의 일부이기에 더욱 불안했다. 또한 자칫 거기에서 추락할 수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유와 성찰]위험사회와 ‘방어적 비관주의’

안전 불감증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지적된다. 한국인은 여러 가지 일에 과민하고 불안해하지만, 위험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둔감하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흔히 취하지만, 안전에 관해서는 무모한 낙관주의를 드러낼 때가 많다. 그동안 별일 없었으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면 불안과 분노의 격정에 사로잡히고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책임자들도 번번이 안이함을 드러낸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예상 밖으로 퍼져나가게 된 일차적 원인은 보건당국의 미숙한 초동 대응이었다. 사태를 너무 가볍게 파악하고 허술하게 대처한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보수적인 안보의식’이 요구되는데 국정 책임자와 관료들은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정보를 감추고 실체를 축소하는 보신주의만 발휘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위험사회를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줄리 K 노럼 교수의 저서 <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원제는 ‘부정적 사고의 긍정적 힘’)에 ‘방어적 비관주의’라는 개념이 나온다. 낙관주의만을 신봉하고 비관주의를 무조건 배척하는 통념을 저자는 문제 삼는다. ‘긍정의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때로 전략적으로 비관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일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을 다각도로 상상하면서(이를 그 책에서는 ‘정신적 리허설’이라고 한다)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을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특히 근대사회에서는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에 실존적인 불안이 가중된다. 후기 근대에 접어들면서 끊임없이 위험을 발생시키는 문명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 체제로 인해 불안은 한결 증폭된다. 물론 그 감정은 경계심과 주의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생존의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이 지나치면 삶이 위축되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 감정을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그 신호가 암시하는 징후를 냉정하게 읽어내야 한다.

근대의 과학과 각종 시스템으로 순조롭게 길들여지는 듯했던 자연은 여전히 불가해한 정체로 꿈틀거리고 있다. 문명의 무분별한 확장이 신종 바이러스를 생성하고 지하의 대수층 고갈 같은 생존 기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인간의 작위(作爲)가 재난을 또 다른 블랙박스로 변형시켜가는 것이다. 생존의 터전은 이해 불가능, 예측 불가능,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탈바꿈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사회의 역량은 오히려 퇴화되어 가는 듯하다. 게다가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드러나는 거짓 행각들로 상황은 더욱 흉흉한 난맥상으로 꼬인다.

재난은 우리의 삶과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안간힘을 다해 일으켜 세우려던 경제가 바이러스의 침투 한 방에 맥없이 주저앉고 있다. 정부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할 때, 공포감이 연쇄반응하면서 시장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다. 사회적 영역에서도 불신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경계 태세에 들어가고 심리적 ‘자가 격리’가 이뤄진다. 부(富)가 지속가능하게 창출되려면, 근원적으로는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 위에 국가 시스템과 사회적 신뢰가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메르스는 결국 정복되겠지만, 그 다음으로 어떤 재난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호언장담과 임기응변으로 얼버무릴수록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위기의 조짐들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집단 맹신을 경계하면서, 미지의 일들을 예견하고 비상사태에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집단 지성을 키워야 한다. 이 험난한 시기를 통해 삶과 사회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가. 공공영역의 파산을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막연한 기대와 상투적인 희망을 거두고 우리의 자화상과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출구는 열리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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