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식당

2016.05.19 20:59 입력 2016.05.19 21:03 수정

맛있는 집을 찾아내는 몇 가지 요령 중에 ‘기사식당’을 가라는 내용도 있다. 입맛 까다로운 운전기사들이 좋아하는 곳이니, 대개 먹을 만하다는 평을 듣는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면이 있다. 운전기사들이란 기동성이 있으니, 일부러 맛있는 곳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기사식당

기사식당은 80년대 호황기에 크게 번성하기 시작한 서울의 대표적인 업종이다. 기사식당이라고 따로 법적 분류를 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차를 세울 공간, 빠른 서비스, 혼자서 시켜도 부담 없으며 단백질과 채소, 곡물이 적당히 어우러진 영양을 담보하고 있다. 여기에 한때 기사식당에서만 이루어지는 독보적인 서비스가 있었다. 동전 바꿔주기, 장갑 같은 소모품 판매, 세차 서비스, 커피와 요구르트 서비스였다. 누룽지맛 사탕이나 박하사탕을 공짜로 주는 것도 기사식당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몇 가지는 없어졌다. 먼저 동전 교환이다. 소액도 카드로 지불하는 풍조가 퍼지면서 동전이 거의 필요 없게 됐다. 운전석 기어 옆에 동전을 채워 넣는 장치를 달고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세차 서비스도 불법인 데다가 정화시설 등을 갖추지 않고 노상 세차를 했기 때문에 없어져 버렸다.

기사식당은 심야에도 문을 여는 업소였다.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고 호황에 접어들면서 택시의 가동시간도 늘어났다. 지금 들으면 믿기지 않겠지만 합승은 물론, ‘4자 합승’도 있었다. 4명의 손님을 각기 다 합승시키는 것이었다. 요금을 두 배 부르는 ‘따블’에다가 승차거부도 심했다. 심야에 이동하는 이들,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 까닭도 있었다. 손님들은 분통이 터졌고, 싸움도 잦았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기사식당

어쨌든 이렇게 밤에 뛰는 기사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맛있는 밥을 파는 기사식당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히트한 메뉴가 바로 불백이다. 불고기백반을 뜻하는 이 음식은 값싼 돼지고기를 간장이나 고추장에 버무려 즉석에서 구워내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상추와 마늘, 풋고추를 곁들였다. 그 시절 야간 택시 안에서는 손님의 술냄새와 기사의 마늘불백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전설적이라고 할 자양동 송림식당은 이 불백 하나로 명성을 떨쳤고, 성북동 기사식당도 연탄불에 구워주는 돼지갈비백반이 기사들을 끌었다. 이후 불백을 주메뉴로 하는 기사식당이 서울 곳곳에 생겼고, 지방도시에도 문을 열었다.

기사들은 목숨 걸고 몇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단속을 피해 곡예운전을 하곤 했다. 끼니를 제때 먹을 수 없으니 위장병을 앓는 기사들이 많았다. 성북동 돼지갈비집의 주인은 “당시 식사 후에 많은 기사들이 위장약을 털어넣는 장면을 늘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폭풍질주의 시대, 기사식당은 변화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요즘 택시 잡기는 그다지 어려운 시대가 아니다. 경기가 바닥이고 대중교통이 택시 운행을 많이 커버한다. 그 흔적이 이제 기사식당의 불백으로 전해진다. 동전 교환도 거의 없고, 세차도 안 해주지만 이제 시민의 ‘맛집’으로 남아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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