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조

2016.05.26 20:52 입력 2016.05.27 00:37 수정

요즘 오래된 식당이 유행이다. 그 때문인지 생긴 지 몇 년밖에 안된 프랜차이즈 식당이 수십 년 역사라고 광고하고 있다. 영어로 ‘since 19xx년’ 하는 식으로 역사를 홍보하는 곳도 늘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대중에게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이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았으니, 갸륵한 일이고도 남는다. 그것도 모자라 ‘원조(元祖)’ 논쟁도 벌어진다. 오래된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이 독립해 근처에 개업하면서 처음부터 ‘원조’라고 붙인다. 또 그 옆에 새로운 집이 생기고 역시 같은 문자를 쓴다. 그러니 진짜 원조집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결국 ‘시조(始祖)’라고 다른 문자를 고른다. 원조나 시조나 같은 뜻인데도 말이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진짜 원조

그래도 언중이 원조라는 말에 익숙하니, 아예 ‘원조의 원조’라는 낱말로 튀어나왔다. 그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의심한다. 저거 진짜일까. 그러다가 한 집은 ‘태조(太祖)’라고 쓴다. 한 왕조의 첫 임금을 칭하던 말이 식당가로 흘러든 것이다. 진짜 원조도 아니면서 어떻게 새로 간판을 해다는 사람이 그런 말을 고를 수 있는 것일까. 물신이 들리면 거짓말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게다. 한 주인에게 물었다. “원조도 아니면서 왜 그런 표현을 쓰느냐”고. “맛있으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하긴 강원도의 한 해안마을에 갔더니, 열 몇 개의 식당에 모두 ‘아무개 방송에 나온 집’이라고 써 있다. 잘 둘러보면 ‘진짜로 나온 집’이라는 표현도 있다. 한 집에 가서 물어보면 다른 곳은 죄다 가짜고 자기네가 진짜 방송에 나왔다고 한다. 서로 할퀴지 않고 도우면서 장사하던 동네에 ‘테레비 귀신’이 들어오면서 서로 원수가 됐다. 호객과 거짓 광고로 이 마을이 망가졌다고 개탄하는 이도 많다.

다른 면으로 비판받아야 할 원조도 많다. 원조의 명성에 기대어 장사를 게을리하는 집도 많다. 원조 소문만 믿고 알아서 오는 손님들, 제대로 평가도 안 하고 그저 원조만 확인하고 맛있다고 추어올리는 미디어와 블로거들이 이 엉터리 원조집들을 먹여살린다. 애써 좋은 재료로, 더 맛있는 기술로 승부하려는 경쟁 식당들의 사기를 꺾는다. 그리하여 그들도 “맛있으면 된다”는 초심을 꺾고 간판에 슬그머니 ‘원조’를 넣는다. 원조는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것이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버텨온 세월을 인정받아야 한다. 새로 그 아성에 도전하는 식당은 두 배의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경쟁이 된다. 맛도 좋아지고 서비스도 훌륭해진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 걸 선순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진짜 원조

진짜 원조, 최초 원조, 시조의 원태조, 원조 아니면 밥값을 받지 않습니다, 트리플 원조…. 우리는 이런 난리에서 뻔뻔함을 읽는다. 선거판에서 몇 달 후 들통날 거짓말을 내뱉는 헛공약과 비슷하다. 하기야, 그 공약 보고 표 찍어준 이들이 나중에 뭐가 됐든 권세를 누리고 있는 마당이니 작은 식당들의 거짓말이야 뭔 대수라고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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