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엑시트, 한국은 엑소더스

2016.07.01 21:05 입력 2016.07.01 21:06 수정
김인국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사유와 성찰]영국은 엑시트, 한국은 엑소더스

어정칠월이 가까운 줄 아는지 벌써 매미가 운다. 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해동갑하기 쉽지 않다. 일상에서 벗어나 마냥 어정거리고픈 충동이 인다. 그럴 필요가 있다. 밤낮없이 돌리는 저 고단한 맷돌질을 멈추고 옛사람의 말씀을 들어보라.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 사람이 하늘 아래서 제아무리 애를 태우며 수고해 본들 돌아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낮에는 뼈아프게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죄어 걱정해 보지만 이 또한 헛된 일이다.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삶의 의미를 묻는 지혜의 책, 코헬렛의 한 대목이다.

요즘 탈출과 관련하여 자주 입에 오르는 서양말이 둘이다. 엑시트(exit)와 엑소더스(exodus). 하나가 사사로운 탈출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탈출이라 하겠다.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몰래 도주’는 엑시트에 속하고, 구명동의를 양보해 가며 다 같이 난파선에서 뛰어내렸다면 엑소더스에 해당한다.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동포들과 함께 바다를 건넌 모세는 엑소더스의 리더였다.

반면 임진년에 의주까지 줄행랑, 육이오에는 단숨에 대구까지 도망간 선조와 이승만은 엑시트의 우두머리들이었다. 북으로 남으로 정신없이 내빼던 그들은 어째서 가다 마느냐고 좁은 국토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주십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사람이란 어째서 이다지도 엉뚱한가.

어느 시대나 권력자들은 엑시트라는 안전출구를 독점하고, 가진 게 없는 민중은 막연하게 엑소더스를 꿈꿀 뿐이다. 지금 한반도 상공에 전운이 감돈다고 쳐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민한 후각으로 킁킁거리다가 여차하면 공항으로 달려갈 사람들이 누구일는지 물을 것도 없다. 짐이란 짐은 모조리 남들의 가냘픈 어깨에 지우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젊어서는 군대를 피하고 지금은 요리조리 세금 피하는 재미로 미끈미끈 뱀장어처럼 기름지게 살면서 일구월심 애국심을 걱정하는 점잖고 원만하신 그분들.

고래 적부터 엑시트를 확보해 둔 자들이 엑소더스의 꿈을 통제하며 으름장을 놓는 게 세상이라지만, 언제라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들이 나라의 진짜 주인일 수는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익의 사유화, 손해의 사회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공적자금이라는 은혜로운 비상식량으로 기사회생의 숨통이 트여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제 은인들인 납세자들을 해고의 풍랑에 던져버릴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 회사가 망해도 제 몫이야 알뜰히 챙겨서 빠져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회사의 진짜 주인일까? 아니면 회사가 망해도 공장을 떠날 줄 모르는 노동자들이 더 주인일까?

“헬 조선 그러므로 탈조선!”이라는 불온한 조어 때문에 내내 심란했는데 이번에는 ‘브렉시트’라는 난데없는 말마디가 다시 양순한 민심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름 첫머리에 ‘그레이트’를 붙이는 나라의 결단이 고작 엑시트라니 기대 밖이다. 그렇다면 대(大)자를 붙이는 한민국은 어쩌려나? 남모르는 곳에 억만금의 재물을 빼돌려 놓고 콩알만 한 엑시트를 들락날락하는 미키 마우스 같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부지런히 엑소더스를 서둘러야 한다. 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라! 가까운 이웃들을 먼저 기쁘게 함으로써 먼 데 있는 이웃들까지 불러들이는 매력을 키운다면 대한사람 대한으로 대탈출을 감행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세월호의 아이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지난주 세월호 정부는 엊그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 종료시켜버렸다. 침몰한 배가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누가 모르랴. 아이들의 엑소더스를 방해하고 자기들만의 엑시트를 서둘렀던 흉계가 드러날까 두렵고 부끄러운 게다. “한국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심도,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이 진실을 은폐하느라 끊임없는 방해만 일삼고 있다.”(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 먼 이웃나라에서조차 혀를 차고 있다. 길은 길 밖에 있었다. 엑스 호도스, 엑소더스는 바로 그런 뜻이다. 지금부터는 남들이 일러주고 정해준 길 말고 우리가 만든 우리 길로만 가기로!

바야흐로 여름꽃이 한창이다. “능소화가 곱게 피었습니다. 꽃피우는 오늘까지 오느라 저도 애썼을 테지요. 힘겹게 살아도 꽃구경 못하고 마는 생명이 어디나 많습니다. 너는 예까지 왔으니, 원 없이 한껏 아름다워라. 절로 질 때까지 아름다워라.”(이철수)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