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엣가시’라도 품어야

2016.06.24 20:57 입력 2016.06.24 21:09 수정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사유와 성찰]‘눈엣가시’라도 품어야

지난 16일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남도의 끝자락 깊은 산사를 찾아오는 이들까지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권력의 행태에 걱정을 토로할 정도였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싶다. 박근혜 정권과 검경이 16일 참여연대 사무실과 함께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전국 500여 시민단체들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실을 수백명의 경찰과 수사관을 동원해 압수수색한 일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엊그제 경향신문 기사(6월22일자 28면)를 보니 트위터에서 화제의 키워드 2위를 ‘참여연대’가 차지했을 정도로 국민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았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국내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강압적으로 수색하고,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 총선넷 이재근 사무처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승훈 사무국장의 집과 차량, 휴대폰과 신체까지 압수수색하는 초강경한, 그래서 실로 몰상식한 태도를 검경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2번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001년 창립 이래 최초로 압수수색을 당했고 계좌까지 빼앗겼다. 시민단체들의 그렇게 많은 선거참여, 정치참여 유권자운동과 캠페인이 있었지만 실무진의 자택과 차량, 전화까지 압수수색당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이를 개탄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떠들썩한 압수수색이 알고 봤더니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낙선운동 대상자 중에서 ‘워스트(WORST)10’ 후보와 ‘베스트(BEST)10’ 정책을 선정하기 위한 이벤트와 “나는 ○○○를 안 찍어요”라는 ‘구멍 뚫린 피켓’(현행 선거법이 오프라인에서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과 사진을 적시하는 일체의 행위를 과잉금지하다 보니, 그것의 대안으로 문제가 많은 후보를 적시하지 못하고 구멍을 뚫어 후보의 이름은 삭제한 피켓)을 내세워 진행한 일부 낙선운동 기자회견 때문이었다고 하니 더더욱 놀라게 된다. 법 테두리 내에서 진행된 유권자들의 온라인 낙선운동 이벤트와 합법적 오프라인 피케팅이 어떻게 처벌대상이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백번을 양보해서 일부 선거법 위반 논란이 있다면, 차분히 소환조사를 진행하면 될 일이지 마치 전국의 시민단체들과 참여연대 등이 무슨 커다란 불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이렇게 호들갑과 과격한 행동을 할 이유가 그 어디에 있을까? 검경은 계속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이는 명백한 과잉수사로서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 권리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박근혜 정권과 검경은 시민사회의 비판과 견제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나 보다. 그렇지만 그러라고 시민단체가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상식이다. 시민단체를 외국에서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로 많이 부르는데 말 그대로 비정부기구이다. 즉 정부기구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당연히 정부랑 다른 소리도 자주 할 수밖에 없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바로 그렇게 올바른 소리를 계속하라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다원성이 보장된 사회에서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옹호하고 주권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 점들을 실패하거나 게을리하거나 아니면 최근의 한국 정부처럼 고의적으로 오히려 재벌이나 큰 부자들만 대변하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에, 더욱더 비정부기구들의 역할은 귀중한 것이다. 비정부기구들이 늘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 쓴소리도 하고, 때로는 강력한 주권자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 사회가 그나마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총선넷이 지난 총선에서 진행한 기억·심판·약속 운동도 바로 그런 비정부기구의 정신과 취지에 의거해 좀 더 민주적이고 민생친화적인 국회와 정치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평화롭고 정당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시민단체들과 유권자들이 선거에 비판적으로 개입해 정당과 후보자에게 정책적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그 당락에 영향을 주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우리 헌법과 선거법의 근본 목적에 해당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거기에다가 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선관위의 안내와 지침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단 한번도 주의나 제지도 받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검경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너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 연설에서 협치를 강조했다. 언행일치의 덕목을 갖춘 지도자라면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을 대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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