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국가와 복지예산

2016.09.01 20:35 입력 2016.09.01 20:39 수정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정부가 며칠 전 발표한 2017년 예산안을 보면 그 규모가 사상 최초로 400조원을 돌파했고, 그 중 복지예산은 130조원이다. 정부 말에 의하면 노동·복지 예산에 중점을 둬서 다른 해 예산보다 증가율이 높다고 한다. 퍼센트로 따져 조금 더 높은 건 사실이다.

[시대의 창]토건국가와 복지예산

그러나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얼마 전 발표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명대에 머물고 있어 세계 꼴찌에 가깝다. 2명의 부부가 2명을 낳아도 인구가 현상유지하기 어렵고, 따라서 인구학자들은 인구를 유지하는 출산율을 2.1명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2.1명은커녕 .2명대로 떨어진 지 오래다. 저출산, 고령화라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인 일본의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1억2000만명의 일본 인구가 장차 5000만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 해서 일본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래도 일본의 출산율은 1.4명대로 우리 보다는 높다. 소득이 한참 높은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애를 적게 낳을 것 같지만 각종 출산장려책 덕분에 출산율이 1.7~1.8명 정도다. 그러니 우리나라만큼 낮은 출산율을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엄청 빨라서, 머지않아 재앙이 올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5세 인구)는 줄고,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도 몇 년 남지 않았다. 이 추세로 가면 2050년에는 한국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노인국가가 될 거라고 한다. 왜 일본과 한국이 이런 위험에 빠지게 됐을까? 그것은 두 나라가 복지를 멀리하고 토건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세계 1, 2위의 토건국가인 일본과 한국이 나란히 노인국가로 돌진함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두 나라는 근본 대책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에는 핵심인 복지, 노동이 빠져 있다. 한국에는 아직 복지=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는 소아병적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복지=포퓰리즘이라고 하면서 증세를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인기 위주의 포퓰리즘이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늘 그렇듯이 내년 예산도 노동, 복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늘렸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여전히 빈약한 수준이다. 빈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조세부담률이 19%도 되지 않고, 복지예산의 비중은 32%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조세부담률이 25~50%이고, 복지예산의 비중은 50%가 넘는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세금 적게 내고, 복지에도 적게 지출하니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저출산·고령화가 이렇게 맹렬한 속도로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이런 게 있다. ‘악마는 꼴찌를 잡아먹는다.’

참여정부는 5년간 복지예산의 비중을 20%에서 28%로 높였다. 스웨덴의 학자 테르본의 정의에 의하면 복지국가란 정부의 복지예산 비중이 50%가 넘는 나라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복지국가로 가는 첫걸음을 딛는 기여를 한 셈이고 이런 정부가 세 차례 더 등장하면 한국도 복지국가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금방 나라가 망할 듯이 참여정부의 복지 증대 노선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복지예산의 비중은 32%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추세라면 복지국가로 가기 전에 노인국가가 먼저 닥칠 위험이 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10년을 허송세월하는 바람에 복지예산은 겨우 32%에 머물고 있다. 28%에 비해 4%포인트 늘지 않았느냐 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것마저도 정부가 의도적으로 늘린 게 아니고, 인구 고령화에 의한 연금 및 요양비 증가 등 자연증가의 결과다. 그러므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복지국가로 가는 데 기여한 게 없고,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강산을 파괴하고 토건국가를 온존시키는 단군 이래 최악의 정책을 썼다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는 겨우 32%의 복지예산을 놓고 사상 최대 이런 수식어를 붙이는데, 사실은 국가가 얼마나 위기인지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지배계급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이 나라는 위태롭다. 중앙정부가 예산이 없어서, 그리고 복지는 포퓰리즘이라고 간주하는 도그마에 빠져 복지를 등한히 하고 있다면 최후의 보루로서 지방정부에라도 복지를 부탁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시비 걸고 방해하고 있다. 실제 토건국가 한국에서 지방정부의 토건예산은 엄청나고, 중앙정부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인데, 그나마 서울시와 성남시가 토건 대신 청년들의 인간자본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니 이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불통과 오만으로 버티기에는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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