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지도

2017.01.01 20:56 입력 2017.01.01 21:01 수정

[지금 SNS에선]출산지도

2016년 말, 하나의 지도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이른바 ‘출산지도’라 이름 붙여진 지도에는 전국의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의 숫자가 표시돼 있었다. 경쟁이라도 붙이듯 순위까지 매겨졌다. 행정자치부가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며 내놓은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공개되자마자 핵폭탄급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는 ‘걸어다니는 자궁’ ‘가임기 여성 지도’ 등 출산지도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 취급한다” “여성이 걸어다니는 자궁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저출산 극복’이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성희롱’이 됐다. 포털 등에는 입에 담기 민망한 성폭력적 댓글이 달리고, 게임 ‘포켓몬고’에 빗대어 ‘빈자궁고’ ‘XX몬고’라고 부르는 말까지 생겼다. SNS에는 “올해 당한 최고의 성희롱” “국가에 성희롱을 당한 기분”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출산지도를 담당한 공무원들의 실명과 연락처가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항의가 빗발치자 행자부는 해당 사이트를 폐쇄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정부 부처가 국민들의 세금(가임기 여성들이 낸 돈도 포함돼 있다)으로 이런 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좌절감을 맛봤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의 몸을 ‘출산 공장’으로 호명한 채 희생을 요구하고, 청년들의 가난한 삶은 아예 괄호치기 했다”며 “생때같은 아이들을 바다에서 구하지도 못한 나라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 따위나 그려가면서 아이들을 더 낳아야 된다고 윽박지르는 것 자체가 비열한 자기모순”이라고 적었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때문에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여건,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허덕이는 엄마들은 둘째를 낳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들이 아기를 낳고 안 낳고는 개인의 선택이지 국가가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출산지도’가 한 가지 기여를 했다면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정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 일자리 대책, 일·가정 양립 대책에 대한 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새해에는 제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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