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장을 새로 놓으며

2017.04.23 20:36 입력 2017.04.23 20:37 수정

들보 위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와 같은 자리를 찾는다. 봄날이 금세 더워졌다. 처마 아래 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마당에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것도, 뒤안 감나무 잎 쪼삣(뾰족)하던 것이 피는 것도 후다닥이다. 집은 금세 들이닥칠 여름맞이가 한창이다.

[별별시선]구들장을 새로 놓으며

날이 하루하루 더워지는 사이에, 구들장을 새로 놓았다. 이사왔을 때에 놓은 구들을 들어낸 것이니까, 십 년 만. 처음 시골 살림을 시작할 때는 불 때는 구들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어서 집을 고칠 때 구들부터 새로 놓았다. 1960년대에 지어진 작은 세 칸 집인데, 구들장 위에 보일러가 깔려 있었다. 그래 방 두 칸 가운데 한 칸은 보일러를 뜯고, 구들을 다시 놓아서 잠자는 방으로 쓰자 했던 것. 그러나 그때에는 구들을 새로 놓는 것하고, 보일러 새로 바꾸는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잘 몰랐다. 보일러 스위치만 누르고 살았으니, 구들방이라는 것도 나무막대기 몇 개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될 줄 알았다. 그 장작을 해마다 어찌 마련해다가, 집 안에 들여 젖지 않게 재어서는, 저녁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잘 피우지도 못하는 불을 붙인다고 매캐한 연기를 맡아가며, 온 집에 그을음을 묻히고 검댕을 날리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끼니로 치자면 밥 사 먹을 식당도 없고, 즉석식품 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밥때마다 쌀을 씻어 안치고 푸성귀를 조물거려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처음에는 얼마쯤 구들방에 불을 넣다가, 슬그머니 보일러 방으로 옮기는 날이 많아졌다. 구들방이라는 게 한번 식은 것을 다시 데우려면 몇 배는 더 애를 써야 하니 점점 악순환. 구들방은 냉골일 때가 더 많아졌는데, 그랬던 것을 집을 새로 고치면서 아예 잠자는 방 두 개 모두에 구들을 놓기로 했다. 불 좀 때고 살았다는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 나무꾼도 아니고 그것을 이제 와서 왜?”라거나, “나무할 산은 있나?”라거나 했다. 아마도 나 또한 누군가 구들방을 놓겠다고 하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여하튼 결심이 서고 일을 벌여서, 있는 구들장을 들어냈는데, 두 평 될까 한 작은 방에 구들돌이며 그 위에 깔아 놓은 흙이 하염없이 두꺼웠다. 구들장을 놓은 옆마을 목수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이사왔다고 아주 공을 들여서 일을 해 놓았던 것. 아침 저녁으로 아궁이에서 밥을 하고 소죽을 끓이고 그러는 삶이라면, 늘 불이 있어서 한번 데운 방바닥이 식지 않고 따뜻했을 테고, 저녁에 불 넣는 것도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불이라고는 잠자리나 데우는 군불만 넣는 집에서는 나무만 많이 잡아먹는 구들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사는 꼴에 맞지 않는 집 꼴.

도시 사람들이 시골 내려와서 처음에 힘들어 하는 것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되었다. 마음 쓰이는 사람이 있으면 집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마을에서는 지나다니기만 해도, 그 집 꼴이 보인다.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것이 다 한 자리니까, 집을 보면 무슨 농사를 짓는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성품이 어떤지, 그런 것이 고스란하다. 아파트하고는 다르다. 사람이 궁금하니 자연스레 집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우리 집도 새로 구들을 놓는 것에 견주면 단열을 좋게 하려는 것은 영 건성이다. 다섯 식구 모두 여름에는 마루가 시원하고, 겨울에는 방바닥이 뜨끈한 집에 길이 들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골에 왔을 때, 누군가 “십 년은 되어야 살림이 정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십 년이 되어 가니까 들었던 말을 주워섬겨서는 새로 이사온 사람한테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뭣 좀 안다는 투로 한마디씩 흘리듯 하는 것이다. 구들을 새로 놓고, 집을 손봤지만 처음 지은 집 모양새를 바꾸는 일은 줄이려고 애썼다. 장맛비 같은 봄비가 쏟아진 저녁에 처음으로 구들에 나무를 넣었다. 불이 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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