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아픔 아는 지도자

2017.04.21 20:39 입력 2017.04.21 20:40 수정

엄마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6남매 맏딸로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엄마와 이모들, 외삼촌은 부모 없이 형제끼리 끈끈해져선지 고향을 떠나서도 한동네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외할머니 묘지 이장 문제로 형제끼리 다툼을 벌였다. 다들 어려운 형편에 비용도 부담스럽고, 누구 한 사람이 땅끝 해남과 완도까지 오가며 작업을 주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마음 상하기도 했지만 결국 뜻을 모아 합장을 잘 마친 듯하다. 외할머니는 전남 완도의 도로변 야산에 묻혀 계셨는데, 외할아버지가 계신 해남의 양지바른 묘역으로 옮겨 누워 다시 긴 잠에 드셨다. 이장을 위해 묘를 파보니 물이 차 있고 나무뿌리가 유골을 감고 있더란다. 그땐 너무 어린 데다 먹고사는 일이 캄캄해 합장은 생각도 못하고 그냥 가까운 곳에 묻어드렸는데, 그대로 40년이 지났다며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별별시선]뼈를 깎는 아픔 아는 지도자

외삼촌으로부터 이장 작업하는 사진을 몇 장 받았다며 스마트폰을 내밀어 내게 보여주었다.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틀니 사진에 한참 눈이 멈췄다. “40년 전에 해드린 건데 썩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며 엄마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스마트폰에 부모님 사진 저장해놓고 아무 때나 볼 수 있는데, 엄마는 널브러진 뼈 몇 점과 오래된 틀니 사진으로만 엄마를 추억하는 것이다. 흙 묻은 채 흩어진 뼈들을 보면서 엄마는 “우리 엄마” 했다.

뼈를 품에 안고 울거나 웃는 사람을 생각한다. 언젠가 봤던 5·18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17년 만에 망월동 신묘역으로 희생자들의 유해를 이장하던 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노파가 아들 무덤가에 앉아 살아 있는 손발을 어루만지듯 마른 뼈를 쓰다듬으며 솔질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울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목욕시켜 새집에 눕히는 게 좋다고, 노파는 웃었다.

얼마 전 세월호 인양 작업 중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뼈가 발견됐으나 돼지 뼈로 판명된 해프닝이 있었다. 뼈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유가족들은 물론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많은 국민들도 함께 긴장했지만, 돼지 뼈라는 것이 밝혀지자 다들 허탈해 했다. 작은 뼈 하나에도 울고 웃으며 삶이 솟구쳤다가 추락하는 사람들이 아직 저 바닷가에 있다.

아담이 이브에게 처음 한 말이 “너는 내 뼈 중의 뼈”다. 뼈는 평범한 물질이 아니라 존재 자체다. 살은 썩어 없어져도 뼈는 수세기 지나도록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커다란 슬픔이나 트라우마, 회한을 두고 ‘뼈아프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은유로서, 치료하면 낫는 살, 즉 육체의 고통이 아닌 자신의 전 존재가 뿌리째 흔들리는 아픔을 의미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뼈로 발견된다. 그 뼈마저 찾지 못해 애태우는, 한 조각의 뼈라도 찾아 안도하는 이들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뼈를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뼈는 음성과 눈빛과 체온이 다 사라지고 남은 최후의 것이다. 엄마였고 아들이었고 딸이었고 연인이었던 눈과 코와 입, 미소와 찡그림, 표정들, 촉감과 냄새, 소리, 형상을 잃어버린 저 유기질과 무기질, 수분의 물체를 보며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너무 비극적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너의 뼈를 사랑할 수 있을까”(이혜미, <지워지는 씨앗>)라고 묻기도 한다.

나는 너의 뼈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뼈를 품에 안고 웃거나 울어본 적 있는 사람, 그런 경험은 없더라도 뼈 중의 뼈를 잃어버려 뼈아픈 이들의 고통을 뼛속까지 함께 아파하며 위로해본 적 있는 사람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한 사람을 자기 ‘뼈 중의 뼈’로 여기며 그가 고통 받을 때 뼈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말 한마디에도 뼈가 들어 있고, 국민을 위해서 뼈가 부서지도록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물론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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