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비치는 지붕

2017.10.01 20:19 입력 2017.10.01 20:21 수정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장이 나빠 소화가 안되는 날은

배를 문지르며 고향으로 갑니다.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산골길

길 끝에 변소 하나

버섯처럼 기울어져 서 있고

그 안에 앉아 있는 어릴 적 나를 봅니다.

힘들어 찡그리며 쳐다보는 내 눈에

썩은 서까래 터진 지붕 틈새로

언뜻 나를 쏘아보던 밤하늘 별빛

독 안에서도 하얗게 내리깔리던 별빛.

겁에 질린 나는 얼른 뛰쳐나오고

밤이면 다시 그 근처를 얼씬 못하였습니다만

그 일로 내 마음 지붕도 그렇게 터져서

다른 곳은 다 고쳐도

그곳만은 꿰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라고

자라서도 또 망가진 변소 하나

몸속에 몰래 지어놓고 살았던가.

쭈그려 생각에 잠기거나

번뇌에 쫓기어 깊이 헤매는 밤이면

터진 몸의 지붕 틈새로

번뜩이며 나를 쏘아보던 별빛

고향 마을 뒷산 솔바람 소리

우주 저쪽의 몸짓까지 함께 묻어와

쏴쏴 나를 쓸며 다니는 소리.

- 이성선(1941~2001)

[경향시선]별이 비치는 지붕

눈비를 막지는 못해도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마음껏 들어오는 허름한 지붕이 시인의 마음에 살고 있네요. 기억 속으로 우주를 끌고 들어온 별빛이 소화가 안되어 불편한 내장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네요. 어두운 마음으로 별빛이 터져 들어와, “다른 곳은 다 고쳐도/ 그곳만은 꿰맬 수” 없으니,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이 고향이고 유년이겠네요.

고개만 들면 물방울처럼 떨어질 것 같은 별이 보이는데, 눈비를 막느라 별빛까지 막아버린 지붕 아래에서 문을 꼭꼭 닫고 사느라 별을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추석날 밤에는 탁 트인 벌판에 나가 일 년 중에서 가장 둥글고 환한 달빛과 사과처럼 탐스럽게 익은 별빛을 눈동자에 실컷 묻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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