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있는 식생활, 출발은 ‘공부’부터

2018.03.07 20:49 입력 2018.03.07 20:57 수정

[직설]줏대 있는 식생활, 출발은 ‘공부’부터

빵과 과자는 다릅니다, 제빵과 제과는 달라요 하고 둘의 차이를 굳이 설명함은 잗다란 지식 자랑만이 아니다. 제빵제과 교과서를 거칠게 요약하면, 반죽이 발효 과정을 거치면 빵이고 거치지 않으면 과자다. 빵은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gluten)으로 기둥을 세우고, 과자는 설탕과 유지로 골격을 짠다. 만들고 먹는 동안을 관찰하면, 빵은 입에 물리지 않고 배 안에서 부담이 없는 주식이어야 하므로 수수한 질감과 풍미에 집중한다. 소박함이 미덕인 제빵에는 설탕과 유지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이에 견주어 과자는 별미로 먹는 간식이다. 반드시 배를 불리자고 먹지 않는다. 본능에 호소하는 매력으로 사람의 기호를 당기는 음식이 과자다. 제과에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미각을 만족시키는 재료인 설탕과 유지가 노골적으로 밀가루와 손잡는다. 소박함은 과자의 미덕일 수 없다. 과자는 화려함에 집중한다. 바로 눈에 띄라고 지시적 색상을 뽐내고, 한눈에 선택받으라고 조형미를 과시한다. 방금 무엇을 먹었든 본능적으로 입에 밀어 넣도록 단내가 진동하고, 한입 와삭 씹는 순간 단맛이 터지는 쪽으로 설계가 되어 있다. 지시적 색상, 물러섬이 없는 조형미, 단맛에 수렴하는 풍미, 이 셋은 과자를 만들고 먹는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과자의 구체적인 특징이다.

“알았어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고 물으신다면, “덕분에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먹고사는지가 한층 또렷해지는 좋은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답하겠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니, 내가 빵집에서 실제로 빵을 집었는지 과자를 집었는지 돌아보자. 우리는 실은 빵으로 오해한 과자를 먹으며, 당과 유지를 잔뜩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간식을 먹겠다면서 밥 몇 공기 열량의 식빵 덩어리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기도 한다. 빵과 과자가 뒤섞인 감각의 혼란이 분식(粉食)에서 주식과 기호식의 뒤섞임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줄줄이 이어진다. 밀가루 분식, 제빵제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이 땅에서는 빵 전문의 빵집, 과자 전문의 제과점이 따로 서기 참 어렵다. 어떤 가게든 일단은 식빵 및 바게트 매출과 동시에 찹쌀도넛이며 꽈배기의 매출을 붙들어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형 빵집, 제과점의 상품 구성과 판매의 현황에서 영어권의 스낵(snack) 가게에 가깝다. 영어권의 스낵이란 요기 되는 간식에서부터 부재료를 잔뜩 붙인 과자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복잡한 설명 더 보탤 것 없이 그냥, 우리 집 앞 프랜차이즈 빵집이 곧 영어권의 스낵 가게이다.

일선의 제빵사, 제과사도 그렇다. 실제로는 당과 유지에 입맛 다시면서 “나는 빵 없이는 못 살아요” 하는 손님 앞에서, 과자 판매대로 바로 들어와서는 “나는 원래 단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를 외치는 손님 앞에서 분식과 제빵제과 문화사도, 기술자가 머리 싸매고 배운 교과서도 일순간에 하릴없는 노릇이 되고 만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 무안해진다. 이래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북돋는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더욱 기본 정보, 기본 지식을 꼼꼼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공부가 절실하다. 늘 과학 교육이 고민인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다 보면 우리는 핵심을 빼놓고 과학자 주변의 일화만 들려주게 된다. 교육은 어렵더라도 본질에 도전해야 한다.”

이 말씀을 음식 앞에 세우고 보니 ‘쉽고 재미있는 주변의 일화’란 갈데없는 맛집사냥에 먹방 아닌가. ‘본질에 도전’한다면 역시 기본 지식과 정보이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무슨 공부? 물건이나 잘 뽑으면 됐지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공부? 하면서 기어코 짜증을 낼, 생활에 지친 장삼이사들의 속내를 모르지 않는다. 아울러 그 피곤과 짜증을 넘지 못하면 내 식생활이 지금 여기서 털끝만큼도 더 나아질 수 없음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기어이 아득인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음식에서도 행동이 필요하다고. 행동의 출발은 공부라고. 정말 줏대 있는 식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이해해야 한다. 제몫을 하는 기술자란 내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두의 출발은 결국 기본을 다지는 공부일 터이다. 그 공부는 현실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뛰어넘는 도전과 잇닿아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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