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경제와 성장률 집착

2019.12.10 20:56 입력 2019.12.10 20:58 수정

정부는 재정 지출 불용·이월을 줄여 2019년 2% 성장률을 달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성장률 1.9%든 2%든 국민 삶의 질이 달라질 건 없지만, 정부 입장에선 성장률이 1%대로 떨어졌단 비난을 안 듣고 경제 심리도 고려해야 하니 2% 성장률을 어떻게든 달성하려는 게 당연하다.

[경제와 세상]사람중심경제와 성장률 집착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지 꽤 됐지만,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브라질, 러시아보다 낮다. 국민소득이 국민 삶의 질을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아니라는 건 잘 알려졌다. 삶의 질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살률과 출산율은 생명과 직접 관련되면서 사람 선택으로 결정되는 사회 통계다. 또 삶의 질을 가장 밑바닥에서 근원적으로 보여줘, 다른 사회 통계와는 차원이 다른 근본 지표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983년 8.7명에서 1991년 7.3명으로 감소했다. 1991년 한국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17.2명의 절반도 안됐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은 자살률이 낮은 나라였다. 그런데 1992년부터 자살률이 서서히 증가해 1996년 12.9명, 외환위기를 겪고 1998년 18.6명으로 급증했고 2011년 31.7명으로 올라갔다. 2012년부터 자살예방사업이 확산하면서 자살률이 하락해 2017년 24.3명으로 낮아졌지만, 2018년 26.6명으로 다시 상승해 자살예방사업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면서 자살률 1위 불명예를 벗었으나 2018년 다시 1위가 됐다.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은 1990년 16.9명에서 2016년 11.5명으로 5.4명 하락했다. OECD 국가 대부분 자살률이 하락했고, 미국과 멕시코만 각각 0.8명, 2명 증가했으며,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조차도 2.2명 하락했다. 한국만 같은 기간 자살률이 18명 증가해 자살률 1위 나라가 됐다.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를 보면 김영삼 정부가 자유화 정책을 편 1993년부터 지니계수가 상승했고 외환위기 이후 급증했다. 연령별 지니계수를 보면 고령층 불평등이 청년·장년층보다 훨씬 심각하다. 불평등 심화는 노인 빈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노인 빈곤율도 46.9%로 OECD 1위다. 연령별 자살률은 20대 17.6명, 30대 27.5명, 50대 33.4명, 70대 48.9명, 80대 69.8명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빈곤 노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합계출산율이 2명 이하로 하락한 것은 1984년이다. 1980년대 출산율 하락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경제활동참가율이 올라가면서 출산·육아로 부담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상승해서다.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복지 선진국들은 출산·육아 기회비용을 낮추는 사회복지를 강화하면서 여성 경제활동 증가에도 2000년대 출산율이 상승했다.

우리도 지난 10년 동안 150조원의 저출산 대책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계속 하락해 예산 낭비만 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으면서 10년간 150조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출산율 상승을 기대할 정도로 충분한 것인지 의문이다. 저출산 대책 예산과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OECD 사회지출 통계 중 아동·가족 예산이 있다. 201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가족 예산 비율은 1.5%로 OECD 평균(2.4%)보다 낮다. 저출산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면 예산도 제일 많이 투입해야 맞지 않나? 가임연령 기혼여성 출생아 수는 2005년 1.74명에서 2015년 1.63명으로 0.11명 감소했다. 따라서 저출산 대책으로 적어도 기혼여성 출산율이 대폭 하락하는 것은 막았다고 볼 수 있다.

기혼여성 출생아 수가 소폭 감소했는데도 합계출산율이 크게 하락한 것은 불평등과 삶의 질이 악화하면서 청년들의 결혼연령이 올라가고 혼인 건수가 급속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우리나라의 저출산 원인과 경제적 영향’ 분석에 의하면 임시직·일용직, 비정규직, 중소기업 취업자, 그리고 임금 수준이 낮을수록 결혼율이 떨어지는데, 여성보다 남성이 더 심각했다.

지난 10년간 주요 선진국 중 한국은 경제성장 실적이 가장 좋은 편이지만, 한편에선 자살률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다른 편에선 중하층 청년 결혼 지연·포기로 출산율 최저의 나라가 됐다. 이렇게 가면 2067년 생산인구 100명이 노인인구 102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람중심경제가 나온 건데, 우리는 어느새 2% 성장률 달성에 다시 집착하고 있다. 이윤 추구 때문에 산재 사망률 1위란 걸 잘 알면서, 자살률 1위 나라에서 태연하게 산다. 이게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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