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 ‘정원’ 경쟁

2018.03.22 20:51 입력 2018.03.22 20:59 수정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오랫동안 숙성된 적폐의 청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청산의 봄을 맞는 이 길목에 우리는 또 다른 폐단이 쌓이고 있지는 않는가도 짚어봐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정원’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유독 아파트를 선호하는 독특한 주거문화에서는 조금 의아한 현상이다. 향후 주거공간의 선호도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아파트로 상징되는 부동산 불패신화와 대도시에 집중된 국가정책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어찌되었건 시민들이 더 이상 회색도시가 아닌 녹색 공간을, 특히 양질의 녹지공간을 원하는 변화는 확실한 듯하다.

[녹색세상]소모적 ‘정원’ 경쟁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틈타 개인의 여가를 위한 사적 공간의 의미를 담는 ‘정원’이라는 이름이 그 본질적 의미를 벗어나 ‘국가정원’ 또는 관에서 주도하는 단순 계절 이벤트의 형태로 자리하며 정부부처 간, 정부와 시민단체 간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발 빠른 산림청은 일명 국가정원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혼란을 주고, 정부 예산에 목을 매는 지자체는 눈먼 세금을 달라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시민의 높은 관심을 빙자해 최근 모 지자체는 하천 둔치에 국가정원을 만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까지 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는 정성과 애정이 필요한데, 늘 범람하는 하천 둔치에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세금을 홍수에 흘려보내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미 4대강사업을 통해 하천 둔치에 조성한 각종 시설들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용을 치르면서 학습하지 않았던가?

과거 극소수 지배층이 수많은 하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권력과 부의 과시용으로 만들었던 정원과 드넓은 사냥터가 시민에게 돌아오면서 ‘공원’이 되었다. 이후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은 꾸준히 확대되었고 이들 공간은 최소한의 관리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형태를 바꾸어 나갔다. 최근 많은 예산을 들여 공원 일부 또는 전체를 화려하게 꾸미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높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얼마 못 가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 바뀌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공원과 정원은 소유와 소비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구분된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사적 공간이 정원이며, 이 사적 공간이 공공을 위하게 되면 공원이 된다. 공적 비용으로 조성하는 정원은 많은 비용을 들인 공원을 만드는 것이기에 이름을 공원이 아닌 정원이라 쓴다고 해서 그 의미나 조성방법이 변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공간인 정원은 높은 유지관리비용을 전제하기에, 과거에도 현재도 공리주의적 접근이 아닌 오로지 소유자 개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소모적 ‘정원’ 경쟁은 매우 우려스럽다. 보편적 가치를 위해 세금으로 관리하는 공간이 많은 유지관리비용이 들 경우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게 된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정원 전시를 통해 주거환경 변화를 위한 정보와 감흥을 주는 이벤트 공간도 필요하지만, 집 주변에 편안하게 휴식할 공간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이벤트에 집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시행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고밀 주거지 주변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의 충분한 확보와 질적 개선이 우선되어야만 하는 시기이다.

순천만 정원이 서울의 올림픽공원이나 월드컵공원, 부산의 시민공원과 무엇이 다른가? 아파트가 캐슬로, 파크로 변하는 것은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 아파트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공원을 국가정원이라 이름 붙인다고 해서 정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원을 정원이라 부르는 것은 정부부처가 세금을 취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과거 정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민의 돈으로 현대판 권력자가 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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