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인성교육과 공정한 수능

4월에 터졌던 어이없는 금융사고가 벌써 잊혀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총자본보다 수십배나 많은 유령 주식이 발행되었고, 그중 1000억원 이상어치가 거래소에서 대량 거래된 사건 말이다. 회사가 30여분 만에 유령 주식을 회수하여 대형 참사는 면했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회사 총자본보다 더 많은 주식이 매각되면서 삼성증권이라는 거대 금융사가 어이없게 부도를 낼 뻔했다.

[학교의 안과 밖]창의·인성교육과 공정한 수능

사건을 복기하면 세월호 참사 판박이다. 우선 담당자 실수로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에게 주당 1000원의 배당금 대신 주당 1000주씩 배당했다. 조금만 신경썼으면 안 했을 실수다. 배당을 받은 직원들은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 1000배나 늘었다. 제정신이라면 이게 착오나 실수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 이 상황을 신고해서 바로잡는 게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개장 전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착오를 알아채기 전에 이 유령 주식들을 재빨리 팔아치워 30분 만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까지 했다. 심지어 일부는 이렇게 유령 주식이 일거에 매도될 경우 폭락하게 될 주식 가격을 이용하여 그 차액으로 이득을 얻어내는 옵션거래까지 시도했다. 회사에 사고 신고는 못할지언정 발각나서 팔아치운 주식을 회수당할 경우를 대비한 헤징까지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 사회는 교육을 탓한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시험을 아무리 잘 쳐도 인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헛것이라며 학교를, 입시를 비난한다. 줄세우기 주입식 경쟁교육 때문에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결과라는 레퍼토리는 안 들어도 뻔하다.

진보성향의 시·도 교육감들이 함께 발표한 4·16 교육선언에서 ‘지식 위주의 줄세우기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중학교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등 ‘창의, 인성교육’을 부르짖었다. 대입에서도 수능 정시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다양한 수시전형 비율이 늘어난 이유다. 공교육 12년의 제일 마지막 단계에 버티고 서 있는 ‘줄세우기 주입식 경쟁교육’의 끝판왕 수능을 그냥 두고서는 어떤 인성 교육도 창의 교육도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사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4·16 교육선언의 내용이 전면화되고 교육개혁의 큰 그림이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수능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강변뿐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국가교육회의는 미래를 향한 교육 개혁이 아니라 과거로 얼마나 돌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주제를 놓고 교사를 쏙 빼놓은 채 여론조사를 한다고 한다. 한목소리로 줄세우기 경쟁교육을 비판했던 진보 언론, 진보 교육감, 민주 진보 정당 관계자들이 앞장서서 줄세우기의 끝판왕인 수능 정시 확대의 목소리를 외쳐대고 있다.

창의·인성 교육이라 불리던 것들이 금수저 교육으로 둔갑하고, 한줄 세우기 경쟁교육이 갑자기 공정한 개천용 교육으로 둔갑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교사더러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고 떼를 쓰는 게 이 나라의 풍토라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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