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쇼크’ 논란의 천박함

2018.09.07 21:00 입력 2018.09.07 21:01 수정

뜨거운 여름 기온이 한풀 꺾인 뒤, 통계청 통계가 사회를 달구었다. 2017년 7월의 취업자 증가폭 31만4000명에 비해 2018년 7월의 증가폭이 5000명에 그쳤다. 게다가 하위 20%의 근로소득은 감소한 반면 상위 20%는 증가해, ‘5분위 배율’이 5.23배였다. 통계 논란에도 불구, 현실은 현실이다.

[세상읽기]‘고용쇼크’ 논란의 천박함

이에 보수 야당·언론은 “문 정부의 실패”라며 ‘고용쇼크’ 내지 ‘고용참사’란 말까지 창조했다. 또 근로소득 격차를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며, 기존 이윤주도성장이 대안이란다. 청년실업이나 민생 전반의 개선을 위한 고뇌는 없고, 이미 낡은 재벌주도, 수출지향, 성장중심으로 회귀하라며 맹목적 공세 일변도다. 왜 맹목인가?

우선, 노동시장 상황을 살필 때, 월별 취업자 증가율이 결정적인 건 아니다. 굳이 보자면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즉 고용률이 중요하다. 이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60% 내외다. 오히려 약간 늘었다. ‘고용쇼크’란 말로 상황을 호도하는 꼴이 쇼크다. 또 근로소득 격차는, 오래 누적된 차별 구조와 비정규직 확대의 결과다. 더 중요한 건, 전 사회적으로 10%의 특권층이 90%의 자원(돈, 땅, 집, 힘)을 독점한 현실이다. 90%의 민초는 나머지 10%의 자원을 두고 다툰다. 90%는 ‘시급 1만원’에 생사를 걸지만, 10%의 특권층은 “한진 조양호 회장, 시급 607만원”이나 “삼성 이재용 부회장, 1160억원 배당금”이 상징하듯, 돈 잔치다. 진짜 분노할 대상은 ‘10 대 90 사회’와 그 내부자들이다. 위 소득격차는 그로 인한 90% 내부 경쟁일 뿐.

이 ‘고용쇼크’ 논란에 8월27일 JTBC는 여야 의원의 ‘긴급대토론’을 열어 출구를 모색했으나 ‘역시나’였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가 “국가적으로 가장 시급”하다며 17개 시·도지사를 청와대로 초청, ‘일자리 간담회’도 열었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 주도의 일자리 창출로 ‘패러다임 전환’을 합의했다.

추운 겨울, 무수한 시민들과 거듭 촛불집회에 참여한 나 역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빈다. 그러나 소망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기에, 사태의 본질을 봐야 한다. 더구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선 논의를 몇 걸음 심화해야 한다.

먼저, 고용·소득·성장 등의 문제는 결코 1~2년의 단기 처방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예컨대, 한국 경제의 최고조기(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전반)를 보자. 당시는 임금, 고용, 성장, 수출 등 모두 좋았다. 하지만 당시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군사정부 내지 문민독재였다. 무지·무능한 정부라는 국내 요인에도 불구, 지표가 좋았던 건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즉 세계 요인 덕이 컸다. 더 중요한 면은, 국내건 해외건 당시엔 ‘아직’ 경제 팽창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 국내에선 노동효율 향상과 내수시장 확대, 해외에선 세계경영 구축과 신흥시장 개척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젠 포화·수축기다. 고성장 잔치는 끝났다! 세계적 경향이다. 이미 20년 전 <세계화의 덫>에서도 ‘고용 없는 성장’을 경고했다.

둘째, 세계적 저성장이라는 ‘현실’의 의미는?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그만 성장해도 좋을 정도로, 아니 그만해야 할 정도로 그간 충분히 생산했다. 그리고 (너무) 충분히 파괴했다. 그동안 ‘무한대’ 패러다임을 따랐다면 이제 ‘충분함’의 패러다임을 실천할 때다.

셋째, (민주당식) 소득주도성장이건 (기존의) 이윤주도성장이건, 나아가 (황당한) ‘출산주도성장’이건 모두 성장 중독증이다. 이의 위험성은, 한편으로 지구 자체가 한계에 왔다는 데에, 다른 편으로 우리가 경제성장 외 다른 대안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된 데에 있다. 그간 성장 시대를 뒷받침했던 ‘낡은 사고와 제도’는 이제 효과 없다. 이를 직시 않고 계속 외면하면 결국 ‘집단 자멸’이다(김종철, <발언 I>, 241쪽).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은 결코 단기 처방으론 안 된다. 전환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1차부터 10차까지 실시해도 될까 말까다. 공멸은 마치 최근 폭우나 싱크홀 사태처럼 ‘입이 딱 벌어지게’ 닥친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침몰한다. 덴마크처럼 ‘시민합의회의’를 활성화,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가야 희망이 생긴다. ‘국정철학위원회’ 신설도 제안한다.

‘고용(성장) 아니면 죽음’인 성장중독, 일중독 사회를 넘어 참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90%의 민초는 물론) 대통령과 청와대, 의원과 장관도 앞 <발언 I·II>를 읽고, 또 매월 ‘녹색평론’ 모임에서 ‘열린 대화’에 참여하는 상상을 해본다. 과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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