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증가의 미덕

2018.09.19 20:38 입력 2018.09.19 20:40 수정

몇년 전 미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클라크는 영국의 산업혁명에 관해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

18세기 영국의 인구구조가 특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클라크,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이은주 역, 한스미디어, 2009).

[역사와 현실]상류층 증가의 미덕

근대 영국에서는 상류층 사람들이 다른 계층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녀를 지속적으로 출산했고, 이것이 산업혁명의 성공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지구상에는 뚜렷한 경제성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류층의 자녀도 대개는 부모세대보다 처지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국의 상류층 자녀들은 설사 신분이 격하되더라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평생토록 유지했다.

클라크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상류층의 독특한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이 영국사회 전반에 퍼지자 영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근면성실하며 검소한 그들이 산업혁명을 주도함으로써 영국의 역사적 운명이 크게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과연 인구 증가와 산업화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인구가 끊임없이 증가하자 영국에서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역으로, 인구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도 충분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반대의 고민에 빠져 있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상품 수요가 계속 줄어들고 경기는 날로 악화된다. 값싼 노동력도 구하기 어렵다. 기피 업종은 겨우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해 유지되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수년째 계속되자 내수경제는 활기를 잃었고 성장률도 떨어졌다.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았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클라크도 강조했듯, 총인구수만 가지고 한 나라의 경제적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19세기 초반 일본과 중국 사회는 영국과 엇비슷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추었다. 동아시아 사회는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해주었다. 동아시아의 위생 수준 및 문화적 환경도 우수했다.

그때 일본에는 3100만명이 살았다. 중국의 인구는 2억7000만명이었다. 영국은 700만~800만명 정도였다. 이후 영국에서는 인구가 급증해 1851년에는 2100만명이 되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였다.

인구가 증가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층민의 증가는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 18세기 중국 사회가 이미 경험한 바였다. 20세기가 목격한 제3세계의 인구폭발 역시 그러했다. 이런 경우 값싼 노동력은 풍부해도 상품에 대한 수요는 별로 늘지 않는다. 극빈층이 확대되어 사회불안만 커질 뿐이다. 18~19세기 영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상류층이 다른 계층보다 자녀를 2배나 많이 낳았다. 급격한 인구 증가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1798)을 저술해 인구 증가의 위험을 경고했다. 인구와 식량 사이에 불균형이 커지면 사회경제적 파탄이 올 거라는 예상이었다.

맬서스의 경고는 기우에 불과했다. 당시 하층민은 영아 사망률이 워낙 높아 저절로 인구가 줄었다. 증가한 것은 상류층의 후손이었다. 클라크는 그들의 내면적 특징을 인내심, 근면성, 독창성에서 찾았다.

19세기의 영국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이러한 가치관이 영국의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동아시아에서는 상류층의 인구가 사실상 정체 상태였다. 가령 일본과 중국의 상류층은 행여라도 자녀의 신분이 하강할까 봐 출산율을 낮추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귀다남’이 복이라고 다들 말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유명한 경주 최부자 집도 그런 편이다. 9대 진사에 12대 만석꾼으로, 이웃을 위해 선행을 많이 베푼 그들이었다. 그 집안의 재산이 대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손이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18~19세기 영국의 상류층은 자녀의 신분 하강을 염려한 흔적이 없다. 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첫째, 영국의 해외 진출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유럽 어디에도 영국의 진출을 가로막을 만큼 강력한 경쟁 상대가 없었다. 둘째, 위생 관념과 의료기술에 혁신이 일어나 상류층 자녀의 생존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셋째, 인권에 대한 상류층의 신념이 강화되어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영국 상류층의 후손이 수적으로 급증했다. 그들이 사회 각 부문에 진출하자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는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결코 포기 안 한다.’ 영국인들은 근면한 자세를 가다듬으며 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상류층의 가치관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클라크의 주장. 이것은 아직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보기 어렵지만 흥미로운 가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친구가 말했다. 우리나라의 욕심꾸러기 부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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