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의 플랫폼, 마을공동체

1980년대 개방의 소용돌이에 둘러싸인 중국의 단면을 묘사한 지아장커의 <플랫폼>이란 영화를 보면 정작 플랫폼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건설이 한창인 소도시를 배회하는 검은 뿔테안경 주인공의 허무, 문화선봉대원 4명이 10여년 동안 겪는 급격한 변화를 담담히 느릿하게 보여준다.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 덩그러니 놓인 인민의 혼란을 얘기하는 듯한 영화에 왜 ‘플랫폼’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세상읽기]직접민주주의의 플랫폼, 마을공동체

플랫폼에 오르는 사람은 주체다. 목적지가 있을 터이니 그렇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플랫폼에 올랐어도 차에 오를 것인지, 아니면 뒤돌아 밖으로 갈 것인지, 플랫폼에서 한동안 미아가 될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국 플랫폼에 오른다면 주체가 된다. 즉, 플랫폼의 매력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플랫폼의 또 다른 매력은 어떤 장소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면 또 다른 어디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주체가 개별적으로 길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수단이 플랫폼이다. 그래서 플랫폼이 대중교통수단의 핵심요소이다. 따라서 싫든 좋든 플랫폼을 이용하면 군중과 마주하게 된다. 내리는 곳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플랫폼은, 인파를 불러오기에, 많은 사람의 이재(理財)를 자극하기도 한다. 한적한 승강장에도 하나 정도의 가판대는 마련되어 있고, 붐비는 역사(驛舍)에는 어김없이 판매시설이 들어선다. 자본만 눈독을 들이는 건 아니다. 무명예술가의 전시공간이나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서명운동 같은 캠페인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꽤 오래도록 관심을 두고 연구도 하다 보니, 마을공동체도 일종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는 다양한 주민들이 있다. 어떤 이는 작은 공방을 소망하다가 메마른 골목에 축제라는 물을 주고 더 나아가 동네 아이들을 마을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마을학교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그 과정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같은 막막함과 고단함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돌이켜보면 곁에 많은 이웃이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인식하든, 못하든, 마을살이를 꿈꾸면 수많은 주민으로 붐비는 마을공동체라는 역동적인 플랫폼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거나, 혹은 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하는, 그 위에 오른 다양한 주민들과 부단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게 된다. 마을공동체 활성화의 종착역으로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그려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촛불 이후, 많은 사람이 직접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꿈꾸었다. 하지만 뜨겁고 강렬했던, 혁명과 같은 기운은 금세 사그라든 것처럼 여겨진다. 여당과 제1야당이 손을 잡고, 복지와 일자리 관련 예산은 줄이고 토건예산은 늘리는 일이 벌어지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지켜보던 사립유치원 관련 법안은 무시되었다. 국회에서 민의를 제대로 살피고 있는지 의심스러운데,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의회에 전하는 데 도움이 될 대선거구제, 연동형비례대표제, 지방자치강화 등에 대해 양대 정당은 큰 관심이 없다.

자칭 대표라는 사람들이 할 마음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물론 주민자치에 대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기도 하고, 지방의회에서는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치회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관련 공무원이나 연구자를 불러서 호통을 치기도 한다. 주민자치가 활성화되어 지방의회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경계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하지만 한 줌의 기득권이 막아서기에는 이미 많은 불씨가 뿌려졌기 때문에, 플랫폼에 올라 진정한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작지만 강한 의지들이 천천히 뜨겁게 불타오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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