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굴뚝 위 그들의 새해 소망

2019.01.01 20:44 입력 2019.01.01 20:55 수정

사람들은 제각기 생각에 잠긴 얼굴로 어스레한 산을 올랐다. 마른 나뭇잎과 삭정이가 들러붙은 채 꽝꽝 언 흙길을 걷는 이들의 머리 위로는 산안개와 같은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길게 이어진 행렬의 보폭은 일정했다. 지난 1년간 안 쉬고 걸어왔을 그들은 새해 첫날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구름 낀 하늘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가족과 온 아이가 모자를 벗으며 팔을 뻗었다.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해야, 해!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도시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75m 굴뚝 위 그들의 새해 소망

그들은 또다시 도심 한가운데 치솟은 75m 굴뚝 위에서 새해를 맞았다. 어쩌면 그들이 있는 곳은 새해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바다 끄트머리에서 붉게 솟아오르거나 산봉우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과 똑같은 태양을 굴뚝에서 바라봤을 거다. 416번째 태양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을 사람들처럼 소망을 빌었을까?

굴뚝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까마득하게 떨어진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새해 아침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사로운 바람이 있을 거라는 것. 부모님이 강건하시길, 아이가 무탈하게 잘 자라길, 사랑하는 이가 별 탈 없이 한 해를 살아주길. 그들이 굴뚝에 오른 것은 이렇게 누구라도 품고 있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1931년 평양 을밀대에 올라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한 평원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49명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종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 직공의 임금 감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웅 따위나 되려고 높은 곳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소망 하나씩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위해, 그 삶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새해 아침 밝은 빛처럼 곧 그들에게도 밝은 소식이 닿길, 그들이 하루빨리 땅으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