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음악관’의 필요성

2019.03.06 20:31 입력 2019.03.06 20:35 수정

사는 곳 근처에 홍난파 가옥이 있다. 이 작곡가가 193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6년간 말년을 보낸 집이다. 걸어서 불과 20분 거리인데 찾아가 본 건 이사 온 지 한참 후였다. 윤동주문학관이나 박노수미술관처럼 널리 알려진 장소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많은 음악가들처럼 홍난파는 한국 근대음악사의 아픈 과거여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와 삶]‘한국 근현대음악관’의 필요성

홍난파 가옥 인근엔 백범 김구의 마지막 거처였던 경교장,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신으로 처음 보도했다는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딜쿠샤)도 있다. 언덕을 내려오면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문받았던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 건너편에 있던 옥바라지골목은 몇 년 전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형무소는 일제와 군부독재 시절 불의에 맞섰던 수많은 이들의 고통이 새겨진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주변은 아파트촌으로 변모했어도 도심의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행사들이 열렸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뮤지컬·오페라·칸타타, 창작 합창곡 발표와 국악 관현악 공연, 오케스트라 기념 음악회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자체와 정부기관의 지원으로 가능한 일이었겠으나, 일회성 행사일지라도 음악인들이 역사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건 필요한 일이다.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이 바로 그 과거일 것이므로.

지난 100년간 이 땅의 ‘음악’은 어떤 변화를 거쳐온 것일까 궁금해진다. 선교사들이 퍼트린 서양음악은 어떻게 한국의 중심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음악에 가해졌던 억압과 배제는 어떻게 극복되었을까. 대한제국 군악대의 음악가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이후 어떤 활동을 했을까. ‘고향의 봄’ ‘가고파’ 같은 노래가 널리 불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소리꾼과 악사들의 활동공간은 어디였고, 경성방송국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1930~1940년대 공연에서는 무엇이 연주되었고 참석한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에 적극 협조했던 음악가들은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질문은 끝이 없지만 한국 근현대음악사 연구는 아직 기본적인 자료 확인과 정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해방 후 오랫동안 우리에게 전해진 음악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과 이야기들이었다. 새로운 연구자들이 옛 자료를 발굴하기 시작했을 때,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만이 아니라 남겨진 기록도 정확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수십년간 은폐되고 미화되었던 과거는 몇몇 자료만으로도 쉽게 부정되었고, 제때 반성하며 청산하지 못한 친일 문제는 현대사로까지 이어지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 근대 음악문화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기에 일본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 관계가 어떤 양상이었는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갔는지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낼 때,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불편한 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가능하지 않겠나.

그간 몇몇 음악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자료를 찾고 이를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하려 시도해왔다. 하지만 빈약한 학문적 토양에서 개인의 연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자료들 사이에서 성급한 추론이나 부정확한 주장을 펼치기보다, 발굴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상황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바탕으로 자료를 해석하는 학문적 엄정함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한국 근현대음악사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학문적 성과가 쌓여 음악을 매개로 20세기 한국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때 서양음악·전통음악·대중음악을 아우르는 한국 근현대음악관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주요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전문가들이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해 교육 프로그램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역사는 그렇게 살아있는 현재가 되어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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