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승리’를 목표로 할 것인가

2019.08.09 20:34 입력 2019.08.09 20:39 수정

일본은 참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식민지의 상처를 남겨 놓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은 나라.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웃나라, 경제-기술대국으로 막대한 경제, 사회,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또한 일본이다. 그 일본이 수출규제로 우리 경제의 뿌리를 뒤집어 놓으려 한다.

[시선]‘어떤 승리’를 목표로 할 것인가

일본의 공격에 대한 대응을 놓고 우리 사회는 대립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힘이 약하니 일본에 함부로 대들 것이 아니라 양보하고 굴복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한다. 모두 미래를 향하기보다는 왜란과 호란의 먼 과거로 향하고 있어 답답하다. 미래를 향한 관점에서 해결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태평양 전쟁 막바지였던 1944년 6월. 당시 일본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은 미국이다. 미국에 일본은 낯설고 이해불가한 상대방이었다. 무력의 수단만으로는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전시의 전략으로는 보기 드문 선택을 한다.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경험이 없었던 여성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의 이해’라는 문제해결을 위한 과제를 위촉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일본인 스스로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긍정하고 존중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탄생한 작품이 일본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국화와 칼’이다. 증오로 가득한 전쟁 상황에서도 상대를 긍정하는 관점에 기초한 연구의 중요성을 상기하였던 것이 일본에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도발로 촉발된 경제전쟁 속의 2019년 대한민국. 제 각각 일본에 대한 승리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선되어야 할 질문은 과연 ‘어떤 승리’를 목표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불과 1세기 전까지 유럽의 시민들은 반복하여 벌어지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나의 전쟁이 가까스로 종료되면, 그 즉시 이웃나라로부터 당한 치욕과 박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였다. 반복되는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과정이었고, 모든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는 악몽 같은 굴레였다.

독일의 실업인 발터 라테나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물자를 공급하는 책임자였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하였던 그는 유럽의 나라들을 서로 촘촘하게 연결시켜 상대방 국가에 대한 파괴가 자신의 파괴가 되는 체계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구상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그 생각을 비현실적이라고 외면했고, 새로운 공화국의 생존을 위해 진력하던 그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을 겪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지혜를 주목하게 되었고, 오늘날 유럽연합이라고 하는 새로운 체제의 씨앗이 되었다.

일본 정치권력의 치졸함에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승리하려는 독불장군의 목표는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일본에 대한 공부, 그것도 일본인의 관점에 기초한 연구가 불가피하다. 한국에 무지한 일본 정치인들 못지않게 우리는 일본을 모른다. 우리가 일본의 어리석음뿐 아니라 그들의 유능함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협력할 때만이 평화와 번영이 가능할 수 있음을 긍정한다면, 일본인들의 관점과 의식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관점을 이해할 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무조건 항복이나 모욕주기가 아니라 진실과 존중임을 이해하게 될 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양국의 시민들이 신뢰하고 협력하는 미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진정한 승리이다. 그에 이르게 된다면 누구보다도 일본 극우정치세력들의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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