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워 담을 수 없는 ‘말’

2019.09.27 20:18 입력 2019.09.27 20:20 수정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한 번 잘못 뱉은 말로 그 자신이 평생 고통받거나 타인을 지옥으로 떠밀게 된다. 단 한마디 말실수에 삶이 나락으로 추락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괴로운 낙인이 찍힌 채 죄인으로 산다. 정말 몰라서, 또는 한순간의 경솔함으로 실언을 해버린 경우에는 말의 ‘회수불가성’이 때로 가혹하기도 하다.

[시선]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영화 <어톤먼트>에서 영국 귀족 가문의 딸 세실리아는 하녀의 아들인 로비와 신분 차이를 넘어 사랑에 빠진다. 짝사랑하던 로비가 자기 언니와 결혼하는 걸 용납할 수 없던 13살 소녀 브라이오니는 어느 날 밤 대저택 안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로비를 지목한다.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감옥으로 끌려간 로비는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비슷한 시기에 세실리아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훗날 유명 작가가 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거짓말로 헤어지게 된 언니와 로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다.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만, 허구일 뿐이다. ‘어톤먼트(Atonement)’는 ‘속죄’ ‘죗값’을 뜻한다. 브라이오니는 소설에서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70년 전의 위증을 속죄하려 했지만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 물정 모르고 감성적인 어린 소녀가 질투심으로 한 거짓말조차 그 파급은 무섭고, 대가는 무겁다.

조선 세조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세조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양정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를 열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양정이 그만 실언을 하고 만다. “즉위한 지도 꽤 됐고, 지난 세월 너무 많은 일을 했으니 이제 왕위에서 물러나 여생을 편히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나름 충언을 한 것이 요즘 유행어로 “말인지 막걸린지” 모를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피바람 일으켜 어렵게 찬탈해서 고작 12년 앉은 왕위인데, 물러나라고?’ 신하의 말에 세조는 분노했고, 양정은 나흘 뒤 참수형을 당했다.

엎지른 말을 주워 담는 사람도 드물게 있다. 자신의 실수와 무지, 잘못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를 낼 때 말의 회수가 가능해진다. 경솔함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뉘우친다. 말로만 줍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도 줍는다. 가수 전효성은 2013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며 무심결에 ‘일베’ 용어를 사용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뜻 모르고 한 말실수였고, 수차례 진정성 있는 사과도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길 법도 한데, 전효성은 “스스로 용서가 안된다”며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러 3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수년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삼일절, 광복절, 5·18 등을 기념하는 한편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강남에 가면 엄청 많아요. 마사지 어쩌고저쩌고 룸살롱… 거기 지금 여성들이 일하고 있잖아요. 그 여성들은 자기가 갔어요? 부모가 팔았어요? 자의 반 타의 반이에요.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 그중에 하나가 위안부고… 할머니들이 과거에 자기가 그 생활했던 거를 마이크 잡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왜 백년 전에 있었던 일 가지고 난리예요?”

귀를 막아야 할지 코를 막아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대신 치워줄 수도 없을 만큼 악취 나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을 배설한 사람은 직접 걸레를 들고 닦는 것으론 부족하고, 바싹 엎드려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 먹어야 할 텐데, ‘학문의 자유’라며 사과할 일 없다고 한다. 한마디 말로 평생 고통받거나 비난을 감수하며 묵묵히 말을 줍는 이의 수고에 비하면 강의 중단이라든가 탈당은 모기 물린 자국만도 못하다. 어차피 정년퇴임이 가깝고, 어디선가는 지지와 환영도 받을 것이다. 그러면 그 말들은 대체 누가 치울까? 귀가 썩고 마음이 병드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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