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김지영’이 보이십니까?

2019.10.28 20:39 입력 2019.10.28 20:42 수정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1982년생 경력단절여성 김지영(정유미)의 삶을 중심에 놓은 것은 원작 소설과 같지만, 결은 다르다. 소설이 남성 정신과 의사의 눈에 비친 김지영에 대한 3인칭 보고서였다면, 영화는 김지영의 삶을 1인칭으로 직접 보여준다. 남녀 갈등은 부각되지 않는다. 악인도, 복선도, 반전도 없다. 담담하고 담백하다. 개봉 전 ‘평점 테러’에 시달렸던 영화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영화를 본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관람객 평점’도 남성 9.42, 여성 9.58(28일 오후 4시 현재)로 성별 간에 큰 차이가 없다.

[김민아 칼럼]당신은 ‘김지영’이 보이십니까?

영화는 한국 여성의 연대기다. 세월이 흘러도 여성의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김지영의 엄마인 ‘50년생 오미숙’(김미경)은 오빠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미싱에 매달려야 했다. 딸은 남동생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처지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취업,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허들에 부딪힌다.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16.5%)과 가사노동 시간(하루 45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유능한 홍보대행사 직원이던 김지영은 전업주부가 된다. 재취업을 꿈꾸지만 ‘시터 이모님’을 못 구해 좌절한다. ‘착한 남편’이 육아휴직하겠다고 나서보지만 시어머니는 결사반대다. 설령 시가에서 찬성한다 해도 쉬운 결심은 아니다.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8.8%에 불과하다. 역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경력단절 위기를 ‘운좋게’ 면한다 해도 끝은 아니다. 일 잘하는 여성 팀장은 ‘드세다’는 평을 듣다가 승진에서 탈락한다. 관습과 문화와 제도가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만들어낸 차별의 전시장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이 땅에 사는 여성들에겐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보편적’ 현실이다. 외려 일각에선 이 소설과 영화가 고학력·중산층 여성의 경험에 한정된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개별적 역사를 고백할 기회조차 갖기 힘든 저학력·저소득 여성들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남성들은 이 정도 서사조차 “판타지+피해망상+프로파간다”(네이버 리뷰)로 여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남성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승한씨가 영화를 본 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답을 준다. “당신이 남자인데 주변에 그런 삶을 산 여자가 없다고 느껴지신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불행한 이야기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당신 주변의 여성들은 당신을 ‘이야기해줘봐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라 판단하고 이야기를 안 해줬을 겁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또 다른 여성서사 영화 <벌새>에 대한 리뷰에서 담론 주체의 변화를 읽는다. “<박하사탕>부터 <친구>와 <부당거래>를 거쳐 <1987>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386 남성 주체’들의 기억과 발화가 중심을 차지해왔다. 이제 ‘82년생 김지영’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엔터미디어)

얼마 전 공연예술의 다양성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 갔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저는 안경을 썼고 키는 176센티미터…”라고 소개했다. 오디오 테스트는 아닐 테고, 이게 뭐지 싶었다. 이어 발표자인 변호사 겸 배우 김원영씨가 “오디오 디스크립션을 해야겠죠. 저는 남자이고, 휠체어장애인입니다. 상체를 많이 쓰기 때문에 팔이 길고…”라고 했다. 그제서야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임을 알아차렸다. 오디오 디스크립션(Audio Description·음성해설)은 본래 공연에서 해설사가 무대 세트와 등장인물의 동선 등을 설명하는 일을 가리킨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관련 행사에서 발표자들이 오디오 디스크립션을 하는 일이 보편화돼 있다고 한다.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으로서, 소수자적 감수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비장애인으로서 ‘다수자’의 위치에 있음은 깨닫지 못했다. 이후 장애인의 현실과 장애예술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저 아세요? 제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처 주는 말을 하세요?” 김지영은 ‘맘충’이라고 비웃는 직장인들에게 맞받아친다. 과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 희열과 고통을 ‘사회적 언어’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남성들의 꿈과 야망, 우정과 취향은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시시콜콜 일러주는 동안에 말이다. 이제 입을 열기 시작한 ‘세상의 다른 절반’들의 목소리를 경청했으면 한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가기를 바란다. 무지는 부끄럽지 않다. 무지하면서 아는 척하거나, 무지하면서 외면하거나, 무지하면서 상처 주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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