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연대

2019.12.06 20:34 입력 2019.12.06 20:35 수정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 시리즈가 화제가 되었다. 광고 주인공은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여 고향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알려준다. 경제적인 성공 속에 사랑과 행복이 깃든다는 메시지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것을 위한 노력과 보람이 없다면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은 빛과 윤기를 잃을 것이다.

[시선]무관심의 연대

현실에는 또 다른 영역들이 존재한다. 꿈을 꾸지만 너무 가파르고 위험한 질서 아래 놓인 이들이 있고(김훈 작가는 경향신문 특별기고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에서 그들이 놓인 곳을 식인사회의 킬링필드라 칭하였다), 송파구 세 모녀와 성북구 네 모녀처럼 더 이상 꿈을 꿀 가능성도,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들이 있다. 물질이란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꿈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흉기가 된다.

지난 11월5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신문기자들, 방송사 차량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든다. 평소 절간이던 재판소 앞마당은 장터가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하르츠 피어(IV)’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다.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직업을 잃게 되면 사용자와 피용자가 함께 기금을 조성하는 실업보험을 통해 실업수당을 받게 된다. 근무 기간과 연령에 따라 6개월부터 2년까지 종전 봉급의 60% 정도를 지급받는다. 실업수당이 끝나면 시작되는 것이 하르츠 피어의 보장이다. 보장금액은 가족이 없는 성인 기준으로 약 50만원, 그리고 주거를 위한 임대료이다. 아이들이 있거나 또는 장애가 있는 경우라면 별도 추가액수를 지급받는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므로 부부 모두 수입이 없다면 각자 자신의 액수를 지급받는다. 하르츠 피어는 독일 사회안전망 가운데 가장 아래에 위치한 기본적 사회안전망이다.

하르츠 피어가 최초 도입된 것은 2005년이다. 당시는 독일 실업률이 최고이던 시점이었다. 사회민주당의 당시 슈뢰더 총리는 종전 사회급여에 대한 개혁안을 이끌었다. 새 제도에는 실업자를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장치가 담겼다. 지원받는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데에 제대로 함께 협조하지 않는다면 급여를 삭감하는 것이다. 가령 실업센터와의 상담일정을 통보 없이 어긴다면 10%의 급여를 삭감한다. 실업센터로부터 소개받은 직장을 한 번 받아들이지 않으면 30%, 두 번째는 60%, 그다음에는 100% 삭감한다. 헌재에서 위헌 여부가 청구된 부분은 바로 이 제재에 관한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관들은 하르츠 피어의 제재를 위헌이라 판단했다. 제재는 30% 삭감까지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헌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회국가를 위한 규율에 관하여 국가는 넓은 재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재량은 최저생계비에 관해선 인정될 수 없다. 최저생계비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법자는 국민들을 교육시키거나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목적이라 해도 최저생계비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할 권리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의 능력이나 의무이행과 관련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력하는 이에게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오히려 독일의 헌법보다도 명확하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국회와 행정부는 그것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헌재도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예산 및 경제상황에 달린 문제이므로 입법자에게 넓은 재량이 있다”고 하며 개입하지 않는 선택을 해오고 있다. 언론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의 벼랑에 선 이들의 문제에 관하여는 도무지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권력, 헌법재판소, 언론 이전에 함께 단단히 연대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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