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디 있으며, 어떻게 가야 할까

2019.12.24 20:56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아이는 공방에서 아크릴화를 그리고 있는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홉 살이라는 아이는 낯선 사람에게도 선선히 말을 잘했다. 그런데 누군가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하자 아이는 대답 없이 걸머메고 있던 가방을 끌어내려 연습장과 연필을 꺼냈다. 그러고는 연습장을 펼쳐 꼬불꼬불한 선을 긋고 그 위에 집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지금 여기 있고, 이렇게 가면 우리 학교예요.”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난 어디 있으며, 어떻게 가야 할까

아이는 손가락 끝으로 우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따라갔다. 어른들은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친절함에 모두 웃었는데, 아이가 선뜻 학교 이름을 대지 않고 약도까지 그려 내보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학생 수가 적은 대안학교라서 이름을 말해주면 학교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아이는 아예 다음 질문까지 미리 대답한 것이다.

똘똘한 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그려놓은 약도는 간결하지만 정확해서 정말 그 길을 따라가면 학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들이 감탄하자 아이는 집에서부터 가는 길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아이는 학교를 오가면서 주변을 예사로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빨간 벽돌로 지은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공터에는 큰 화분이 버려져 있고,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는 큰 하얀 개가 있고, 그 옆 옷 가게는 벌써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도 아이는 눈여겨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앞만 보고 걷는 어른들은 아이가 본 것을 못 보았을 테고, 바삐 걷느라 지금 자신이 어디쯤 걷고 있는지 알지 못해서 아이처럼 약도를 쉽게 그리지 못할 것이다. 한 역사학자는 지도란 본래 가야 할 길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른들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지도는 명확하게 그릴 수 있을까? 아니 지도란 본래 주변을 살펴야 그릴 수 있으니 가야 할 길에 대한 지도 또한 앞만 보고 달린다 해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그려준 약도를 보면서 엉뚱하게 나는 일 년 동안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어디 있으며, 어떻게 가야 할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