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SD 패소’는 미국 책임

2019.12.25 20:44 입력 2019.12.25 20:52 수정

이란 ‘다야니’ 일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한 사건이 한국 패소로 최종 확정되었다. 첫 패소이다. 외국인 투자에 정부 조치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특권(ISD)을 준 이후 처음으로 패소한 것이다.

[경제직필]‘한국 ISD 패소’는 미국 책임

약 750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 돈은 애초 사건이 발생한 2011년에 이란 투자자가 몰취당한 5400만달러의 계약금, 그때부터 발생한 이자 수입 손실, 이란인 원고가 쓴 변호사 비용 200만달러 등을 포함한다. 중재 판정부는 이자율을 ‘리보 + 2%’로 정하여 이란인의 이자 손실을 계산했다. 판정부가 받아들인 승소 액수는 애초 원고가 청구한 금액의 99%이다. 원고 입장에서는 완승이지만, 한국에는 완패이다.

어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잘못 대응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사실관계 형성이 완성되었다. 현 정부는 과거의 사건 처리를 떠맡았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이 사건의 발단이다. 한국 완패의 가장 큰 책임이 미국에 있다. 미국 편승주의가 문제이다.

이 사건의 핵심 키워드는 ‘국적’이다. 이 사건의 출발은 론스타 사건과 닮았다. IMF 외환위기 후 한국의 주요 기업 대주주 경영권을 외국 기업이 인수하려고 하였다. 이란 다야니 일가들은 이란의 대표적 가전 회사인 ‘엔텍합’의 주주이다. 이들은 한국의 대표적 가전 기업인 대우 일렉트로닉스(‘대우’)가 부실회사가 되어 공적자금이 투입되자, 대우 지분 57%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5억6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계약금을 대우 채권단 은행에 지급하였다. 여기까지만 론스타와 같다.

문제는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였다. 당시 미국은 국제법에서 허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일방적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진행하였다. 이란 투자자들은 싱가포르에 ‘특수목적기구(SPV)’ 법인을 만들어 이 회사를 통해 인수 투자 대금을 한국으로 보내는 구상을 해야 했다.

만일 당시 투자자가 이란 국적이 아니라 미국 국적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예 처음부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2006년에 이란의 핵개발을 이유로 이란계 은행을 미국의 달러 결제 망에서 퇴출하는 제재를 하였다. 이란계 은행과 간접적으로 금융 거래를 하더라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는 유엔 안보리의 이란 제재 결의가 허용하는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미국은 2007년 12월에 제재 대상 이란계 은행을 크게 확대하여 미국 은행들과의 거래를 금지하였다. 2010년 6월, 미국의 형사 법정은 은행 거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하여 소액 쪼개기와 같은 비공식적 거래도 처벌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이란 투자자의 대우 인수에 암운을 드리웠다. 이 사건 중재 판정부의 판정문에는 한국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여러 차례 보고서에서 이란 자본의 대우 인수에 우려를 표명하고 인수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판정부는 대우 채권단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거래를 어렵게 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판정문에 썼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란 투자자의 대우 인수 계약에는 대우의 주고객이었던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로닉스(GE) 등이 이란계 자본의 대우 인수에 동의하도록 대우 채권단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해결하는 것이 전제 조건으로 되어 있었다. 이 내용은 판정문에 나온다.(아직 187쪽 분량의 판정문 전체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중재사건 보도 매체인 GAR이 판정문을 입수한 뒤 분석한 기사에 근거한다.) 그런데 대우 채권단과 한국자산관리공사는 GE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도 미국의 이란 제재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계약은 무산되었다.

판정부는 냉정하게 한국이 내세운 계약 취소 사유는 ‘사칭’이라고 했다. 한국은 싱가포르 SPV가 투자 자금을 지급할 능력이 되는지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아 계약을 취소했다고 주장하였으나, 판정부는 이를 배척했다. 이 문제가 계약 취소가 될 만큼 심각한 문제로 검토한 한국 문서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이 문서를 제출하지 않자 한국에 불리한 내용이 있으니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 짐작에는 한국이 제출하지 못한 검토 문서에는 미국의 이란 제재 문제에 대한 염려가 적혀 있을 것이다.

한국의 패소 뒤에는 미국이 있다. 중재 판정문 전문과 이명박 정부 시기 문서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미국이 실제로 이 거래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밝혀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최소한 경제에서는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