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현실

2020.01.09 20:54 입력 2020.01.09 21:04 수정

‘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된 거대 정당들의 어깃장으로 누더기가 되어 ‘준’이라는 딱지가 붙고서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녹색세상]상식과 현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대우는 상식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으로 이러한 노동의 상식이 20년 넘게 부정돼 왔다.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꼼수였다. 모회사에 철저히 의존하는 자회사 정규직은 실제로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경제의 ‘민’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나라 ‘민’의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허덕이는 상황을 방치하며 약속하는 ‘민생’경제는 자가당착이며 공허한 말이다. 그런데도 올해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지금 ‘민’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의 왜곡을 분칠하는 선심성 대책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 없이는 정의도 공정도 없다.

지금의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기후는 붕괴되고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폐쇄, 신규 7기 건설이라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적어도 의도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도 상식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쓰레기로 쏟아내는 핵발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멈추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건만, 임시저장소를 추가로 건설해서라도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게 현실이다.

상식을 외면하고도 끄떡없는 현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바꿀 수 없다고, 그 부작용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이윤이 세상을 움직이는 불변의 원리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장악하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은 탓이다. 하지만 역사는 세상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늘의 현실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바뀔 수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을 직시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이성과 감정을 동원해 스스로 판단”할 때 시작될 것이다(토머스 페인, <상식>).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