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를 어찌할 것인가

2020.02.21 20:35 입력 2020.02.21 21:55 수정

아직 구성되지도 않은 21대 국회를 걱정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 정당의 추세를 선거일까지의 기간에 투사해 볼 때, 21대 국회는 벌써 대단히 퇴행적인 국회가 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향후 4년은 그러한 국회를 업고 가기에는 몹시 지쳐있고 또 매우 시급한 과제들을 너무나 많이 안고 있다. 그래서 심각한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하잘것없는 권력 싸움에 골몰할 저 300명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할 것인가?”

[세상읽기]21대 국회를 어찌할 것인가

의회 민주주의가 그 몇백년의 시련 속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절마다 그러한 기능을 하는 의회가 나타나 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급변한 국제 정세와 정신없이 진행되는 국내의 산업혁명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격심한 사회 갈등의 위기에 처한 바 있다. 1832년의 의회 개혁으로 나타난 ‘개혁 의회’는 이러한 시대적 도전에 맞서 구빈법 철폐를 위시한 실로 과감한 입법 조치를 통하여 영국을 산업혁명과 세계화에 최적화된 나라로 바꾸어 내게 된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새롭게 나타난 주요 산업국가들의 의회 또한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세력의 존재를 인정한 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과감한 개혁을 통하여 전후 산업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또한 임박한 기후 및 생태 위기, 기술과 산업의 급격한 변화, 지정학적 조건의 변화, 인구학적 변화, 심각한 불평등과 실업 등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 몇 개를 함께 안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알량한 행정 명령이나 조례 따위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일관되고도 통일된 미래 사회의 상을 품으면서 그에 기반한 분명한 철학과 방향을 제시하는 굵직한 법안들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국민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야만 그나마 씨름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는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옛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못 됩니다. 정부 자체가 문제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보면, 과감하고도 신속한 입법을 통한 우리 사회 전반의 업데이트는커녕, 모든 법안을 정쟁과 게으름으로 막아버리고 이를 통해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고 고통을 가하는 것이 지난 국회의 모습이었다.

21대 총선을 두 달 정도 앞둔 지금 더 퇴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각 당의 대표 공약이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미래를 위한 사회 개조는커녕 타깃으로 정한 유권자들에게 아부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한심하고 낯부끄러운 것들이다. 각 당이 새로이 영입했다는 인재들은 그저 그렇고 뻔한 ‘내러티브’를 하나씩 둘렀을 뿐 기실 기회를 노려온 정치낭인들이 대다수이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선거 쟁점이라며 들려오는 소식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이는 간판만 내걸었을 뿐 실질적인 정당 활동은 별로 내실있게 할 생각이 없으면서 비례 의석만 노리는 ‘알박기 정당’들 - ‘진보 정당들’도 예외가 아니다 - 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이 와중에 집권 여당은 국민들 대다수가 진저리를 치고 있는 해묵은 이야기들을 꺼내 들고 이번 총선을 치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여 주요 야당들은 또한 진저리가 나는 대여 공세로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이 와중에 당선되는 자들 중 우리 사회의 미래를 품고 있는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설령 10명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과연 나머지 290명을 움직여서 21대 국회를 ‘개혁 의회’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퇴행적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면서 ‘해결책’은커녕 가장 심한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업고서 앞으로 나가야 할까? 먼저 민간에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정당과 국회가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포기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오픈소스의 방식으로라도 장기적 사회 비전과 거기에 합당한 지금 시급한 정책 및 제도 개선의 내용들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둘째, 각종 비정부 비영리 단체들은 입법 청원이나 로비 같은 것에 매이지 말고 이렇게 마련된 내용을 가지고 독자적 내용과 행동으로 국회를 압박 아니 포위해 들어가야 한다. 총선에서 찍을 사람과 정당이 없다고 한탄하는 이들은 선거 이후의 이러한 활동에 뜻을 모을 일이다. 물론 다가오는 선거에서 모두 최대한 지혜롭게 투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심한 국회가 생겨난다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이제부터 우리는 저 골칫덩이 국회를 떠메고 새로운 사회로 전진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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