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은 필연이더라

2020.04.13 20:42 입력 2020.04.13 21:05 수정

“네 명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미처 이름을 못 보고 나누어 줬어요. 그런데 공교롭게 단 한 명도 자기 메달을 못 받고 엉뚱한 메달을 받은 거예요. 이럴 확률은 얼마일까요?” 몇 년 전에 수학자들 앞에서 내가 실제로 한 질문이다.

[세상읽기]머피의 법칙은 필연이더라

19세기에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는 국제행사라면 대다수의 사람은 1896년에 시작된 올림픽을 연상한다. 하지만 하나 더 있다. 1897년에 시작된 세계수학자대회(ICM)다. 실험실에서 승부를 보는 실험 학문과 달리 모여서 난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수학 분야의 전통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운동선수들을 모아서 올림픽을 열었더니 인간의 한계라던 영역을 넘는 사람들이 속출하더라’라는 스포츠 분야의 각성과 비슷하달까. 4년마다 개최되는데, 개막식에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이 수여된다. 2014년엔 서울에서 5200명의 수학자가 참석해서 열렸다. 그런데 맙소사, 4명의 수상자가 모두 엉뚱한 메달을 받았다. 모두가 엉뚱한 걸 받는 분배를 수학에서는 derangement라고 하는데, 그게 실제 일어난 것이다. 물론 식후에 수상자끼리 연락해서 교환했지만….

당시 대회의 조직위원장이던 나에게 이 사실을 전해준 이는 지금은 고인이 된 마리암 미르자하니 교수였다. 완벽하게 당황한 나에게 “이럴 확률은 8분의 3이니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위로해주긴 했다. 미르자하니 교수는 그해 서울에서 필즈상을 수상하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지만 3년 뒤에 유방암으로 작고했다. 아직도 역사상 유일한 여성 필즈상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란에서 대학까지 나왔으니 유일한 회교권 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9일간의 대회 기간에 열리는 연회에서 농담을 겸해서 ‘메달 배달 사고의 확률’을 질문한 것인데, 참석한 수학자 수천명은 폭소로 맞아주었다. 질문은 조금 더 이어졌다. “이 사건의 확률은 8분의 3이지만, 대회 직전에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감염병이 확산하는 사태가 일어나서 대회가 취소될 뻔했던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 그랬다. 당시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번지면서 세계 도처에서 공포감이 증대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입장에 따라서 서아프리카 3개국 참석자의 등록 취소를 긴급히 결정했는데, 해당자 중 일부는 자국을 출발했다가 중간 기착지에서 돌아가야 했다. 상처받았을 사람들 생각에 심란했다. 여비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생애 처음으로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하는 분들이어서 더 그랬다.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난처한 상황을 말할 때 쓰인다. 우리말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쯤 될까. 2014년 8월에 나에게 머피의 법칙은 강력했다. 수학자 수천명이 운집한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읽고 있는데, 아니 세상에, 마지막 페이지가 없었다. ‘어디 빠트렸지?’ 잠깐 아찔했지만 기억을 소환해서 겨우 마치긴 했다. 미국과 유럽의 국제수학연맹 지도자들과 에볼라 사태의 대처를 위한 화상회의를 하느라 2주쯤 잠을 잊으며 쌓인 피로의 여파였다. 물론 이 사실은 폐막식에서 내 자해성 블랙 유머의 주제가 됐다.

지금 진행 중인 코로나19 확산은 특정 지역의 이슈를 넘은 팬데믹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국제행사가 취소되고 있다. 몇 년을 고생하며 준비한 사람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참석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으니 수긍은 하지만 불운을 탓하는 마음까지야 어쩌랴. 머피의 법칙은 인생의 필연 같아서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다른 결과를 내니 위기 극복 능력을 기르는 기회라고 낙관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게 최선이다. 어느 때인가는 지금의 갈팡질팡하던 당신의 모습을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으로 추억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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