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다”

2020.04.20 20:42 입력 2020.04.20 20:47 수정

[이문재의 시의 마음]“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다”

늦은 밤, 주택가 골목 가로등 아래. 한 사내가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이웃이 사내를 발견하고 물었다. “뭘 그렇게 찾고 있소?” 그러자 사내가 등 뒤 자기 집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관 열쇠를 잃어버려서요.” 이웃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니, 집은 저쪽인데 열쇠를 왜 여기서 찾는 거요?” 사내가 답했다. “여기가 밝잖아요.”

[이문재의 시의 마음]“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다”

신입생 없는 입학식이 지나고 비대면 온라인 강의도 어느덧 두 달째다. 웨딩드레스처럼 화사했던 벚꽃도 신록에 가려 빛을 잃었다. 환하고 고요해서 가상현실 같은 캠퍼스를 바라보며 팬데믹 이후를 생각한다.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 처음일 것이다. 전 세계가 이렇게 ‘하나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국적과 인종 가릴 것 없이 인류가 ‘위기’라는 한 단어로 수렴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무총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인류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은 신종 감염병의 근본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생산력 제일주의 탓일 것이다.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자 자연이 역습을 해온 것이다. 어디 한두 번이랴. 수많은 질병과 자연재해가 그토록 경고해왔지만 우리는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요즘 내가 붙잡고 있는 화두 중 하나가 ‘사회적 거리 두기’다. ‘사회에서’ 거리 두기는 어렵지 않다. 물리적 거리 두기의 의미라면 타인과 2m 이상 떨어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회와’ 거리 두기는 만만치 않다. 우리 삶을 옥죄는 ‘사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비사회, 위험사회, 익명사회, 성과사회, 피로사회, 자기계발사회, 감정사회 등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입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 겹겹의 사회들에 대해 질문하고 함께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사회적 거리 두기일 텐데, 이번 기회에 저 사회들을 넘어서자는 대안 담론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듯이,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돌아가서는 안 된다. 돌아보자. 그 일상이 어떤 일상이었던가. 모든 부문에서 불평등이 노출되는 일상, 그 과정에서 복합위기가 가중되는 일상, 그리하여 미래가 사라지는 일상이었다. 조만간 코로나19는 퇴치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장기적, 포괄적, 심층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팬데믹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인류에게는 최소 네 가지 이상의 난제가 주어져 있다. 기후위기, 핵무기, 자원고갈, 불평등.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신종 바이러스가 지구를 잠시 멈춰 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뉴 노멀’이 쏘아 올리는 여러 신호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마스크가 쌀이나 석유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섬뜩했다. 우리는 식량 자급률이 27%, 에너지 자급률은 3%에 불과한 나라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바닷길이 막히면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장기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플랜을 얼마나 갖춰놓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라고 미래학자 헤이즐 헨더슨은 말했다.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 시대와 문명 모두에 적용되는 경구다. 위기는 이럴 경우 크게 낭비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할 때,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위기를 낳은 문제의식과 동일할 때, 그리고 위기 이후가 위기 이전과 같을 때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 못한다. 이와 달리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전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면 이전과 다른 시간 속으로 진입한다. 한마디로 모든 진정한 위기 대응 계획은 ‘전환 설계’여야 한다.

뒤돌아보되 돌아가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앞이, 앞날이 있다. 전환 설계를 위한 열쇠는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밝은 곳에서만 열쇠를 찾으려 하지 말자. 그간 어둡다고 눈길을 두지 않았던 곳, 불가능하다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곳을 다시 보자. 그런 곳에 있는 열쇠 중 하나가 기본소득을 통해 농업을 되살리는 것이다. 재난기본소득에서 한 발 나아간 상시적 농민기본소득이 미래로 가는 여러 문 가운데 하나를 열어젖힐 것이다. 마스크보다 ‘쌀’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사회의 뿌리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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