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과 미국 사이

한국 우파에 일본과 미국이 있다면, 한국 좌파에는 서유럽과 북유럽이 있다. 보수라 불리는 우파는 전기, 가스, 상수도, 병원까지 민영화하자고 주장했다. 진보라 불리는 좌파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 예를 들며 주거, 의료, 교육 등 다방면으로 복지를 늘리자고 했다. (세금을 올리자는 말은 없었다.) 치고받으며 싸우는 동안 대통령 선거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국정 철학도 정권에 따라 달라져 개혁을 했다가 돌아갔다가, 풀었다가 줄였다가,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기워 만든 조각보 같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제도로 무슨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어중간한 그야말로 한국형이었다.

[세상읽기]북유럽과 미국 사이

건강보험 없이 코로나19 치료를 받으면 최소 5000만원이 든다는 미국식 모델은 애초에 갈 길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막상 스웨덴에 살 때 가장 불편한 점이 도무지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병원이었던 터라 스웨덴 모델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에 와있는 미국인 의사 친구는 한국의 의료제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민간영역으로 두고 경쟁하며 영리를 추구하지만 규제가 많아 공공성이 있고 건강보험 덕분에 미국과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정쩡한 한국형 모델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같은 시스템이라도 메르스 때는 지금과 달랐으니 단지 제도나 관료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의 경험에 정치적 결단력, 중앙집권적 통치체계, 높은 시민의식과 창의성, 약간의 유난스러움이 고루 결합해 좌파와 우파가 찬양해 마지않던 어떤 나라보다도 이 고약한 바이러스를 잘 막아냈다.

각종 외신을 통해 쏟아지는 한국식 방역에 대한 찬사를 보며 명치끝부터 솟구치는 뿌듯함에 취하는 일이 코로나19 시기 유일한 낙인 듯 싶었다. 그 와중에 시기 어린 비난도 있었다. “모바일을 활용한 한국의 추적 방식은 사생활 침해” “한국은 군부 독재 경험해 순종적” 각각 프랑스와 네덜란드 매체에 실린 말이다. 언제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다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런 무례한 말을 할까 싶었지만 다시 보니 무너진 우월감을 감추기 위한 조바심으로 읽혔다.

한편 지향으로 삼던 여러 나라가 위기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갈피를 잃었다. 우리 것도 아닌 남의 모델을 두고 이 길이 맞네, 저 길은 막다른 길이네 하다가 내비게이션의 전원이 나가버린 격이다. 용케 중간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둘은 여전히 아웅다웅 중이다.

‘포린 폴리시’는 엊그제 “미래는 아시아-하지만 중국식은 아니다”라는 글을 내며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실었다. 처음 들은 칭찬에 우쭐대는 아이처럼,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토록 자신이 없었을까? 의도한 적은 없지만 한국의 어중간한 현재가 우리도 모르는 새 클린턴과 블레어가 추구했던 제3의 길, 루스벨트가 연구했던 스웨덴식 타협안(The middle way) 비슷한 무엇인가가 된 것은 아닌가?

북유럽의 아무리 좋은 제도도 한국에 가져오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역사와 문화,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수십년 가꾼 열매만 보는 것은 사과나무에 접붙여 오렌지를 맺길 바라는 격이다. 북유럽 모델이건, 미국 모델이건 총천연색 세상에서 흑백을 두고 다툴 이유가 무언가? 한국에 맞는 색과 농도를 취해 우리의 길을 가면 될 일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의 현재가 이번 위기를 대응하기에 적절했을 뿐, 오늘의 성과에 취해 있을 이유도 없다. 정치권이 여론을 좇아 100% 대 70% 줄다리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린뉴딜을 발표해 인프라를 정비하고, 고용유지 지원금을 내려 보내고, 해외자본의 기업사냥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낸 나라도 있다. K모델이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싸울 시간 없다. 2라운드는 경제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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