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인류의 시

2020.04.27 20:35 입력 2020.04.27 20:42 수정

영화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네팔로 향한다. 나치가 좇는 성궤의 단서를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스승은 죽었고, 첫사랑이었던 그의 딸 마리온이 술집, ‘레이븐’을 홀로 운영하고 있었다. 속편에서 리버 피닉스가 분한 젊은 인디아나에게 중절모를 씌워준 인물, 에브너 레이븐우드의 실제 모델이 바로 시카고대학의 인류학자 로버트 브레이드우드 박사다.

[세상읽기]고통받는 인류의 시

고고학과 보물찾기의 차이가 별로 없던 20세기 초반, 브레이드우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소택지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유물이 쏟아지는 우루크의 와륵(瓦礫, 무너진 기와) 더미에서 보물찾기에 열을 올리던 동료를 뒤로하고, 더 오랜 과거로 찾아나선 것이다. 대학 당국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물관에 전시할 번쩍거리는 왕관이 없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류의 근원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오랜 설득 끝에 겨우 탐사대를 꾸려 자그로스산맥 기슭의 한 언덕, 자르모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무려 15층에 이르는 신석기 초기의 주거지를 발굴했다. 다양한 농경 유물은 있었으나, 국가 조직의 흔적은 없었다. 기원전 약 7000년경, 토기 없는 신석기 시대다.

브레이드우드는 비록 성궤를 찾지는 못했지만, 농경과 국가 형성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길가메시가 우루크의 왕좌에 오른 때는 이로부터 한참 뒤, 기원전 2800년경이니 말이다. 이후 여러 발굴을 통해 농경은 신석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수렵채집인도 종종 정주 생활을 했음이 밝혀졌다. 농경, 정주, 국가, 문명이라는 표준 서사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국가의 성립을 위해서는 수천년을 기다려야 했고, 가까스로 세워진 국가는 단명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기원전 20세기경, 수메르에 한 사내가 살았다. 부유하고 어진 남자였다. 가족과 친구도 많았다. 그러나 어느 날 끔찍한 질병에 걸린다. 설상가상 빈털터리가 되고, 졸지에 외톨이가 되었다. 비탄 속에서 이렇게 신음한다.

“나의 바른말은 거짓이 되고, 악의를 가진 병은 내 몸을 에워싸는구나. 나의 신이여. 대체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고 버려둘 것인가?”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된 사내의 이야기는 이후 ‘루드룰 벨 니메키’란 이름의 시가 되었다. 지혜의 신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구약성서 욥기의 원작이자, ‘고통받는 의인의 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인류의 오랜 질문이다. “열심히 올바르게 살았는데, 왜 나는 아픈 질병에 걸리고, 가진 재산을 잃고, 가족과 친구가 떠나가는가?”

농경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별로 없다. 바로 질병과 굶주림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농경이야말로 ‘인류사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국가 형성이 반만년 동안 지연된 이유 중 하나도 질병이다. 애써 쌓아 올린 도시가 역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무너졌다. ‘메소포타미아는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전염병 확산의 중심이 되었고, 파멸에 파멸을 거듭했다.’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의 말이다. 농경 사회가 수렵채집 사회를 압도한 것은 생산 방식의 효율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풍토병이 된 농경 사회의 전염병이 수렵채집인을 몰살시키며, 점점 주변부로 내몰았다.

이미 300만명 가까이 코로나19를 앓았고, 20만명 이상이 죽었다. 깊은 애도를 표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적, 사회적 후유증은 모두가 고통스럽게 나누어야만 한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죄는 없다. 질병은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처음에는 농경이었고 이제는 생태계 파괴와 무분별한 세계화다. 수천년 전 수메르인은 아마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지만, 두 번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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