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국가 단위의 자살’

2020.05.29 03:00 입력 2020.05.29 03:04 수정

요즘 30대 전문직 여성 사이에서 인사처럼 묻는 말이 “난자 냉동해놨어?”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했더라도 일 때문에 출산을 늦추는 이가 그만큼 많다. 합계출산율 0.92명, 세계 유일 ‘출산율 0명대’ 나라가 대한민국 현주소다. 신생아 수가 줄어들면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빨라진다.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세수가 감소하고, 경제에 활력이 떨어져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는 지난해 5185만1427명을 정점으로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함께 올해부터 연평균 33만명씩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세대가 은퇴할 무렵인 206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2.5%까지 늘어난다. 신입사원은 뽑지 않고 간부만 늘어나는 회사와 비슷하다. 부양인구는 느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총 부양비가 증가한다. 생산인구 한 명당 부양인구가 2017년 0.37명에서 2067년 1.27명이니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스웨덴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젊은층이 이민을 떠나고,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두려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 감소를 ‘국가 단위의 자살’이라고까지 보았다.

당시 집권했던 사민당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훗날 각각 노벨 경제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뮈르달 부부에게 연구를 맡겼다. 400쪽에 이르는 <인구문제의 위기> 정책 보고서에서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은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통계, 이론을 다뤘고 사회학자인 알바 뮈르달은 달라진 여성의 인생관, 사회정책의 제약에 대해 언급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고용안정과 육아 지원 정책을 대책으로 내놨다. 보고서에 있는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열악한 환경에 미래마저 불안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90년 전 스웨덴과 오늘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930년대부터 스웨덴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스웨덴식 인구위기 해법은 아이를 낳으면 무엇을 주겠다는 식의 인센티브가 아닌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다. ‘얼마를 주면 아이를 낳을까’가 아닌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경력단절의 위협인지, 양육비인지, 혹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이 없어서인지 출산·육아에 디센티브가 될 만한 요소를 줄여 나갔다. 스웨덴 정부는 경력단절 염려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공공어린이집을 확대했으며,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되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정책을 폈다. 현재 스웨덴 출산율은 1.9명에 이르고 지난 50년간 1.5명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금부터 5년 후인 2025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스웨덴은 이미 2014년 65세 인구가 전체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금은 한국이 스웨덴보다 젊은 사회지만 20년 후에는 두 나라의 지위가 역전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40년 스웨덴은 네 명 중 한 명이, 한국은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다.

스웨덴에는 3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미래위원회가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국가지도자가 수장을 맡는다. 인구문제를 중심으로 노동환경, 에너지 공급, 사회통합, 민주주의, 평등, 가치관, 지속가능발전, 기술변화, 국가경쟁력 등 분야를 망라해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낸다. 한국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아이를 낳지 않는 첫번째 이유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는 세대에게 숙제까지 잔뜩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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