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함께 찾아야 할 때

2020.06.05 03:00 입력 2020.06.05 10:48 수정

[세상읽기]통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함께 찾아야 할 때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6·15선언이죠. 하지만 남북관계는 아직 안갯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여명학교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명학교는 탈북 청소년들을 가르칩니다. 작년 말 은평구로 새 터를 정하자 곧 주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아니고 북한 이탈 학생이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학교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우려된다”는 주장도 있었죠. 여명학교는 통일여론의 바로미터입니다. 여러 조사를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보지만 관심은 크지 않고 경제적 부담에 신경 쓰인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론을 통탄하며, 이런저런 통일교육을 주문합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통일은 종교화된 지 오래입니다. 실체가 없고, 비논리적이며, 주술적 힘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통일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역대 정부 통일안은 다 비슷하죠. 화해협력, 남북연합, 선거, 그리고 통일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통일 그 자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죠. 통일되면 어떤 나라가 되나요? 수도는 서울로, 아니면 평양으로 하나요? 대통령제 등 정치체제, 선거 여부, 화폐 통합, 인구 이동, 부동산시장 규제, 군대와 경찰의 통폐합, 교육체제 이원화 등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것이 한둘이 아니죠. 하지만 학계 내 제한적 논의뿐입니다. 막연한 희망, 믿음뿐인 셈이죠.

통일이란 목표는 정당한가요? 한민족이었으니 통일돼야 한다고 하지만 그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의 발명품임은 지적하지 않습니다. 민족의식 자체가 일제강점기 전후해서 생겼죠. 게다가 ‘한민족이니까 통일해야 된다. 왜? 한민족이니까’라는 주장은 순환논리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남한과 북한이 이미 다른 민족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 경제, 언어, 풍습, 역사관, 정체성 등 어느 면을 봐도 차이가 크죠. 같은 한민족이다 우겨도 문제는 남습니다. 한 민족이 두 나라에서 살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독일민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나뉘어 잘 삽니다. 대만은 분단에 만족하고 있죠. 통일이 외려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탐라의 고통은 4·3항쟁까지 이어졌죠. 예멘 내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통일의 혜택을 드는 주장도 있습니다.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비교하며 “통일이 대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단비용은 지금도 줄일 수 있습니다. 남북 방위비(330억달러)는 남북 간 외교 노력을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통일 후 중국, 일본 때문에 줄이지 못할 수도 있죠. 남북철도 건설도, 남북경제특구 가동도 통일 전에 가능합니다. 통일되고 대박이 났다고 칩시다. 누구의 대박일까요? 자본주의 발달이 고도화돼 있는 남한, 그중에서도 대기업에 그 이득이 집중되겠죠. 북한 땅은 남한, 서구 투기자본의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고 긴장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등 정치외교적 혜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나뉘어 있다고 꼭 전쟁을 하지는 않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보면 알 수 있죠. 한 나라를 이루고 있다고 꼭 평화롭지도 않죠. 유고슬라비아나 시리아처럼 말입니다.

사회적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소원” 통일은 정치적 주술이었습니다. 북진통일을 위해서 빨갱이를 무찔러야 한다는 소리나, 민족통일을 위해 외세를 처단해야 한다는 소리 모두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됐죠. 그리고 이제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겁니다. 관심이 떨어지는 게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제 그 껍데기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통일 제단에서 내려와 이 땅에서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에 있죠. 이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합니다. 여명학교에 자리를 내주며 시작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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