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경제 병진노선

2020.07.07 03:00 입력 2020.07.07 10:07 수정

북한 경제가 위험하다. 중국의 대북한 수출입 수치는 북한 관련 통계 중 가장 믿을 만하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은 국제제재가 강화된 2008년경부터 급증해서 전체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2017년 유엔 안보리에서 역사상 최강의 제재를 결의한 뒤 북한의 대중국 수출입은 급전직하했다. 2013년 29억1300만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수출은 2019년 2억1500만달러를 기록해서 15분의 1로, 90% 이상 감소했다. 반면 수입은 2014년 40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28억8300만달러로 60%가량 줄어들었다. 지난 3년간 누적된 무역적자만 70억달러로 이 수치만으로도, 한국의 약 40분의 1로 추정되는 북한 GDP의 17.5%나 차지한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설상가상, 지난해 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북한의 수출액을 상반기 동안 또다시 50% 이상 감소시켰다. 주먹구구로 계산해서 현재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2010년대 중반 북한 경제가 활기를 띠었을 때의 5%가량에 불과하다. 핵무기 보유는 물론 북한의 안보를 강화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경제를 강타했다. 현재와 같은 제재가 국제적으로 수용되는 한, 핵-경제 병진 노선은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최근에 공개된 전 국가안보 보좌관 볼턴의 자서전은 ‘비핵화’의 길도 그리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볼턴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한 요구는 미국 매파의 생각과 행동을 대변한다. “포괄적이고 증명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뒤에 미국이 사용한 FFVD도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다)에 관한 기본 신고(basic declaration)를 하지 않고서는 협상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볼턴이 여러 번 강조한 대로 이 신고가 현재 미국이 가진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엔 언제든 협상이 중단된다. 이처럼 미국 매파는 6자회담 때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미국 의회는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영변 핵시설의 파괴와 2017년 이래의 제재 완화”라는 ‘스몰딜’은 남북 정부, 그리고 미국무부 일부(비건 특사) 사이의 암묵적 합의였던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 정도로 “일단 성공했다”며 트윗을 날리고 싶었지만, 탄핵 와중에 미국 의회와 언론의 비난을 두려워했다. 되돌아보면 하노이 회담은 시작하기도 전에 결렬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플랜B도 마련하지 않은 채 회담에 임했다. 한국 정부는 그의 낭패와 분노를 달래기는커녕 명백히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타미플루조차 보내지 않았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지대”를 주장했다. 물론 냉전 전기와 후기, 그리고 핵 보유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상이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결과는 CVID에 해당한다. 많은 사례와 국제법적 근거를 지닌 비핵지대화는 남북이 동시에 “기본 신고”를 하고 같은 방식으로 검증을 한다는 점에서 공정하며 따라서 대상과 절차에 관한 규칙을 만들기도 편리하다.

그래도 북한의 의구심은 남을 것이다. 북한의 솔직한 신고는 곧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국에 외과수술형 ‘선제공격’의 대상과 위치를 친절하게 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할 때까지 중국의 확장억제를 약속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일제강점기의 만보산 사건, 1958년 종파 사건,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의 비난 등의 역사적 기억 때문에 북·중 동맹은 확장억제를 주고받을 정도로 신뢰가 강하지 않았고 군사력의 비대칭성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15년 전인 6자회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북·중 간 경제력과 군사력 격차는 한·미 간보다 더 벌어졌다. 중국은 미·중 간의 직접적 군사적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환영할 것이다. 핵보유국에 위협받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국이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도 핵 확산 금지라는 최상위 전략을 만족시킬 수 있으니 만족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경제를 정상화할 방법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개혁 방안은 2002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점진적 실천도 이뤄지고 있다. 이제 북한은 핵-경제 병진이 아니라 비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탈출로를 찾아야 한다. 바야흐로 재편과정을 겪을 동아시아 분업구조에 북한이 편입할 수 있다면 “대동강의 기적”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명히 주체사상의 경제적 자립은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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