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가르치면 될 일인가

2020.07.18 03:00

지난달 칼럼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생태전환교육 도입 소식을 전했다. 기후위기, 팬데믹 시대가 오면서 아이들에게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창의적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게 새로운 정책의 목적이다. 여러 시·도교육청이 비슷한 정책을 도입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에너지와 플라스틱을 줄이는 ‘에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울산교육청은 매달 세 번째 수요일을 ‘채식의 날’로 운영한다. 부산시교육청은 지역여건을 담은 환경교과서를 개발한다. 충북교육청은 초록학교 만들기와 학교숲 운동을 대표정책으로 채택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이런 움직임은 지난 9일 전국 17개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후위기 환경재난시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기후변화는 다음 세대의 미래까지 위협하며 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번도 해본 적 없었던 낯선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가 존재할 것인가?” “산업화 시대의 낡은 이념과 교육을 혁신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교육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시·도교육감들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대전환을 맞이할 것이다. 여기에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교육부에 ‘기후변화·미세먼지 관련 교육 활성화’를 건의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올 9월 시작되는 정규학기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 연간 33시간의 기후변화 관련 수업을 의무화하는 사례를 들어 교육과정 내 의무화를 주장한다. 교원연수와 교육대, 사범대 등 교원 양성과정에 환경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안도 들어있다.

그런데 아이들만 가르치면 될 일인가.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들어있는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대책으로 추진하는 그린벨트 해제 방침을 보면 ‘교육 따로, 정책 따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철학은 여전히 물량에 치중하는 성장주의이고, 해법은 대개 디지털화로 통한다. 아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물려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없으니 너희가 배워서 만들어보라”는 책임전가로 느껴진다.

한국판 뉴딜은 “위기를 버텨서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정상 성장경로’를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무엇이 정상 성장인가. 한국 경제 성장률은 1990년대 연평균 6.9%에서 2010년대 2.9%로 떨어졌다. 반면 불평등을 나타내는 5분위배율은 1990년대 3.86배에서 2010년대 4.57배로 증가했다. 성장은 어렵고 불평등은 심화하는 경제구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앞에서 저탄소 경제로 탈바꿈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저성장,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그린 뉴딜이 한국판 뉴딜로 바뀌면서 초점은 디지털 경제에 맞춰졌다. 자율주행차와 자율운항선박,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만성질환자 관리, 빅데이터 활용 교습모델 개발역량 강화, 디지털 신기술을 이용한 원격근무 시스템, 서빙 로봇, 드론 배송,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스마트 그린도시, 디지털 융합 직업훈련, 전 국민 대상 디지털 역량센터… 디지털화는 구조적 변화를 선도하는 만능열쇠일까. 이런 분야에 대한 대대적 정부투자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코로나19 이후의 지속 가능한 미래인지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린 뉴딜의 핵심인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역시 미흡하기 짝이 없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국제사회의 목표이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만, 국내 현실에 비춘 구체적인 감축목표는 없다. 신재생에너지와 그린모빌리티의 확대는 뚜렷한 목적과 방향 없이 경기후퇴를 막고 일자리를 만드는 성장 경로의 일환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나마 미세먼지 차단 숲, 생활밀착형 숲, 자녀안심 그린 숲 등 도시 숲을 만든다는 게 유일하게 토목(공공건물과 학교의 그린 리모델링)과 과학기술 만능에서 벗어난 대책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장거리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누구나 공원과 녹지의 소중함을 느끼는 터에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마저 도시의 허파인 그린벨트 해제 방침을 만나면서 빛이 바랬다. 한쪽에서는 숲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는 정부의 모순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육은 축적된 문화와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를 가르친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를 때 아이들의 정치적 각성이 생긴다. 그레타 툰베리, 그리고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왔던 이유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물려달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은 더욱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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