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9세’의 앞과 뒤

2020.08.15 06:00 입력 2020.08.15 06:01 수정

혼자 사는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독거노인복지의 주요 현안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주민센터에서 여성독거노인들을 따로 모아 교육을 할 정도다. 특히 여름철에 많다. 더워서이거나, 무릎과 허리가 시원찮아 방문객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힘들어 현관문을 아예 열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자나 주변의 성인식뿐 아니라 특히 자식들한테 폐가 될까봐, 당하고도 차마 신고하지 못한다. 그러니 강도짓을 하고도 신고하지 못하게 성폭력을 저질러놓고 간다. 그 비슷한 나이와 처지지만 ‘아주 다른 여자’에 관한 영화 <69세>가 이달 20일에 개봉된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아주머니, 할머니, 누님, 어르신, 노인네, ××년 사이. 몸매가 예뻐 뒷모습이 아가씨 같다는 칭찬과 거짓말과 성희롱 사이. 간병노동과 남의 집 살이 사이. 우울증과 건망증과 치매 사이. 그 중간 어디에 한 여자가 있다. 남들 눈에뿐 아니라 자신도 헷갈릴 지경이다. 간병해주던 썩 괜찮은 남자와 동거까지 하고는 있지만 ‘선생님’ 집이 내 집이 아님을 정확히 안다. ‘간병인 같지 않은 차림새’ 타령을 하는 말질과 시선과 의심들 틈바구니에서, 안전하고 무시당하지 않을 몸과 밥과 집을 찾아 홀로 나왔지만, 그래봤자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치근대는 와상남자환자의 집으로 제 발로 들어간다.

69세의 늙은 여자, 효정(예수정 분)을 ‘멀쩡하게 생긴’ 29세 남자가 성폭행했다. ‘선생님’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정액 묻은 속옷 같은 증거물이라도 있냐?”는 형사의 비웃음 묻은 추궁에, “네, 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응하며 증거물도 제출한다. 그럼에도 개연성도 없고 강제성도 입증할 수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법. 수치심에 뒷걸음치며 숨어 잊히기를 바라다 다시 용기를 낸다. 가해자 놈의 발길질에 쓰러져서도, 굳은 무릎을 싸안고 꿈지럭거리며 일어나 제 길을 간다. 더 싸울 작심이 있어서다. 선정성 따위 없고, 차분하며 단호하다. 성폭력을 넘어 우리의 말과 생각 속 폭력을 발라낸다. 사회의 고정관념과 개연성을 휘저으며, 무엇보다 당신의 의심에 대고 느리게 묻는다. “나 믿어요?” 힘으로 지랄하는 것들에 맞서 뭣도 없는 늙은 여자가 싸우는 이유는, 우선 자기 자신 때문이다. 그러면서 효정이 우리에게 요청한다. “같이 가주실 거죠?”

한편 ‘69’는, 서로의 성기를 동시에 오럴 서비스 해주는 체위의 기호이자, 성별도 따지지 않는 공정한 구호여서 좋다. 성인식의 개선과 더불어 보건의료의 발달로 인한 고령화사회에서, ‘노인의 성’은 이미 모두의 의제다. ‘저는 안 늙을 줄 아는’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나 노인과 노인의 성을 혐오할 뿐이다. 특히 남성노인의 성욕과 의료와 성폭력 가해는 주요한 노인복지정책이자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성노인의 성은 여전히 덮여 있고, 그 틈에서 여성노인의 성폭력 피해가 감춰지고 있다. 그러니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여성노인은 더더욱 공론화가 더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들끼리는 쉬쉬하면서 계속 낄낄대왔고 속내로는 부러워하고 겉으로는 쑥덕거려온 수다거리다. 구술생애사 작가인 내가 모든 주인공들에게 은근하고 집요하게 묻는 질문은 성애의 경험과 성인식의 내력이다. 사회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자 개인 주체성과 관계의 주요 지점이어서다. 나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화자이기를 작심한 할머니들은 까짓것 머 솔직히 털어놓는다. 70대 중반 언니는 평생 몰랐던 오르가슴을 70 넘어 사귄 남자와의 ‘잠자리’에서 알게 돼 좋아 죽겠단다. 영감과 사별한 경상도 산골 70대 여자가 60대 남자랑 한 연애는 마을 할망구들의 입방아에 결국 깨졌고, 우울증에 빠진 주인공은 사는 맛이 없단다. 억누르고만 살았던 양반 할머니 하나는 치매가 오고서야 풀어내긴 했는데, 애증과 망상의 악다구니로 치달았다. 피해자든, 욕망이든 할머니들은 자기 성의 담지자이자 실천자이며 투쟁하는 주체로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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