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의심케 한 광화문 거리의 인파

2020.08.17 03:00 입력 2020.08.17 03:04 수정

지난 토요일 오후, 집에서 페이스북을 보다가 잠시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광화문 거리가 인파로 가득 뒤덮인 사진이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3명을 기록해 방역당국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상향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로 다음날이다. 이날 오전 발표된 신규 확진자 수도 160명을 넘어 수도권 대유행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었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자료사진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바닥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수많은 얼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버린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코로나19와 매일 사투를 벌이느라 이마에 흉터처럼 고글 자국이 남아버린 중환자실 간호사, 거리 두기 단계가 상향돼 사회와의 관계가 단절되면 생존까지 위협받게 되는 장애인과 독거노인들, 그리고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내 어머니의 얼굴까지.

지금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1차 대유행 때에 비춰봐도 여러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최근 확진자 급증세를 이끌고 있는 수도권 지역은 대구·경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구밀도가 높고 이동량이 많은 곳이다. 수도권 확산세가 빨리 잡히지 않을 경우 1차 대유행 때 모두를 놀라게 했던 하루 신규 확진자 900여명 기록은 우습게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의료진의 피로도 쌓일 만큼 쌓인 상태다. ‘덕분에’ 캠페인이 지친 의료진에게 작은 위로나마 됐을지는 몰라도, 이미 바닥난 그들의 육체적 체력까지 회복시켜주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1차 대유행 때보다 더 큰 2차 대유행의 파고가 밀려온다면, 의료진은 물론이고 심각한 병상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1차 대유행 때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른 탓에 무증상 감염자의 숫자도 그만큼 더 많이 누적된 상태다. 최근 교회는 물론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학교, 상가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소규모 집단감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대규모 집회의 여파까지 합세한다면,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두의 경각심이 조금씩 무뎌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그나마 이제까지 거리 두기 단계를 1단계로 유지해 올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일부 보수 기독교단체 회원들은 코로나19의 확산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에게도 기저질환이 있는 가족이 한두 명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본인부터가 코로나19 고위험군인 60대 이상 고령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두렵지 않다기보다는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를 믿지 않고, 정부가 강조하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믿지 않는다. 정부가 위험을 과장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광훈 목사가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진자가 대거 나오자 “외부 바이러스 테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신앙의 자유는 신성한 것이며, 누구든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 비록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라 할지라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4·15 총선 원천 무효”를 외쳤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는다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와 방역당국이 규제하려는 것은 당신의 신앙과, 당신의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방역수칙 위반 행동이다. 수만명이 모여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음식을 나눠 먹는 바로 그 행동. 바로 그 행동 때문에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면, 방역수칙을 열심히 지키며 예배에 참석해 온 다른 기독교인들이 온라인 예배만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를 꼭 신뢰하지 않아도 좋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면, 전문가를 믿으면 된다. 언론매체에 나와 코로나19 예방수칙을 강조하는 감염 전문가들도 모두 정부를 대변하는 것 같아 그조차 신뢰하기 어렵다면, 자주 가는 동네 병원 의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한번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과 당신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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