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본법’이 의미하는 것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간절한 삶의 문제를 말해보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어주기,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보기,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들과 앞선 과정을 반복하기. 이 단순하고 작은 일들이 반복되어 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 조합 이사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 조합 이사

지난 8월5일 ‘청년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청년을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을 넘어 청년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취업에 기여한 성과만을 기준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평가하던 청년 정책은 청년에 대한 법적 인식이 달라짐에 따라 주거, 금융 생활, 문화 활동, 공간 지원, 청년 참여 등 청년의 삶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청년기본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주체’로서 ‘보통의 청년’을 호명하게 된 변화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정책당사자는 정책 수립 과정에 포함되지 못했다. 청년 정책의 수립과정에서 청년이 함께 정책을 구상하고 협의하여 정책을 발표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책 수립 과정에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만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과 정책당사자는 ‘어느 일방의 의견을 내는 집단’이라는 깊은 편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생각은 정책이 한쪽으로 치우쳐짐을 경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정책당사자 혹은 권리구제 당사자인 보통의 시민을 공공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국가의 운영방식에 자리 잡았다. 정책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책 수립 과정에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 의견을 전하거나 정책이 완성되어 변경이 불가능할 때 공청회라는 이름으로 초대되어 정책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흐름과 달리 청년 정책은 청년이라는 당사자가 그 정책의 수립자가 돼야 한다는 합의를 구축하며 발전해왔다. 소수의 명망가만이 정책 수립 과정에 일부 참여하는 것을 넘어 ‘19세에서 34세 누구나’ 참여 가능한 청년참여기구를 만들고 그 기구에서 자발적으로 논의해 청년 정책을 수립하도록 함으로써 정책수립자 대열에 정책당사자를 위치시켰다.

그 흐름이 2013년부터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쌓여 ‘청년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이 글을 시작하며 그때 그 청년이 한 작은 행동들이 이 법을 만들었다고 감히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적절한 정보와 충분한 논의 시간을 제공하면 정책당사자 누구라도 가장 현실에 적합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법을 읽고 싶다. 그리고 이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자 지금 일어나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어가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와 정보를 제공해내는 인프라가 한국 사회에 더욱 절실하다. 이 과정을 거친 결정이 언제나 옳은 방향이라 할 순 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파괴적 갈등과 간극 앞에선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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