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전야

2020.08.24 03:00 입력 2020.08.24 03:05 수정

팬데믹 초기에 놀란 것은 너무 많은 사람이 코로나19가 좀 쉬면 낫는 병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2주 정도의 잠복기가 너무 길고, 바이러스의 경우는 백신 개발도 쉽지 않고, 개발된다고 해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을철에 맞는 독감 백신의 경우를 보자. 가을에 너무 일찍 맞으면 다음해 3월에 백신 효과가 떨어져, 10월에 맞지 말고 11월에 맞아야 한다는 캠페인이 있을 정도였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해도 다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이런 여러 속성들을 종합해, 나는 코로나 국면으로부터 경제가 벗어나는 시기는 빨라야 내년 말이라는 시나리오를 설정했었다. 나도 많은 글과 책을 쓰다 보니 글 사이에서 충돌이 생길 위험성이 있고, 말을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소한의 일관성을 위해 여러 가설을 설정하는데, 코로나19의 경우 빠를 경우 내년 말 종료될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낙관적 전망이다. 과거와 같이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시기는 잘해야 2년 후 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설정한 시나리오는 가을 대유행 이전, 여름이 끝나갈 때쯤 환자가 급증하는 피크 곡선이 나오리라는 것이다. 2012년 메르스의 경우 5월에 국내에 도입돼 여름 극성기가 위기였다. 코로나19 초기 인도에서 확진자가 하루에 1만명씩 나올 때, 뉴델리의 기온은 40도 정도였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장마에도, 폭염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8월 여름 휴가 때 바이러스 폭풍의 에너지가 누적돼 가을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게 나의 예상이었다. 불행히도 코로나19는 습도와 온도가 조절 변수가 되지 못하고, 집단이든 개인이든 방역과 생활 패턴만 변수가 되는 것 같다.

전광훈으로 상징되는 8·15집회의 여파가 결국 바이러스 폭풍의 뇌관이 된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생활 패턴이 느슨해진 데다 무엇보다 정부가 종교 소모임을 허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와서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바이러스의 특징이 원래 신천지 등 국가의 영향력이 잘 미치지 않는 ‘서브컬처’ 속으로 숨어들어가기 마련인데 말이다.

올겨울을 지나 내년 봄까지
코로나의 폭풍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겪을 경제적 타격은
셧다운과는 비교도 안 된다
2주간이라도 일상 멈추는 게
우리 모두에게 나은 일이다

지난봄, 한국은 다른 국가에서의 셧다운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에서 1차 유행을 버텼다. 이유야 뭐든, 대단한 성과인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좋든 싫든, 2차 유행으로 들어간다. 1차 유행 때에는 잘 버텼던 방송사에서도 확진자들이 나왔다. 드라마 촬영도 어느 정도는 버텼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렵다. 이제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셧다운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프로야구가 멈추는 것은 아쉽지만, 학교를 매개로 하는 수많은 메커니즘들이 정지하는 것이 그와 비교도 안 되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직 우리는 3단계 거리 두기를 시행해 본 적이 없다. 외출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아야 하고, 이번에는 사재기도 심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과연 올해 수능이 치러질 것인가, 이게 가장 민감할 것 같다. 2차 코로나19 폭풍과 겨울 독감이 만나면 병원들도 버티기 어렵다. 독감과 코로나19는 외견상 구분이 어렵다.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증도 사회 구성원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머니 게임’ 양상을 보이는 금융시장도 상당한 후퇴를 피해갈 수 없다.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는 금융 사이의 내부거래만으로 금융 호황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 모든 것을 특정 종교나 특정 인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혐오가 정서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그걸로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이러스는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행동 패턴과 노출도만 따진다. 누가 잘못했느냐와는 상관없이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 대폭풍 전야에 서 있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코로나19 잠복기인 2주만 모두가 조심하면 지금이라도 코로나19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잠복기는 코로나19 변이가 생겨난 지금까지도 변하지는 않았다.

나는 2주간 시한부라는 전제하에 보다 고강도의 셧다운을 시행하더라도 그걸 지지할 것이다. 올겨울 그리고 내년 봄까지 바이러스 폭풍이 진행되면 경제적 타격은 셧다운과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 우리는 선제적 조치를 하지 못해 온 국민이 해고의 불안 앞에서 눈물 흘렸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 위기다. 다행인 것은, 바이러스 앞에 우리가 일시적 공동체가 된다는 점이다. 2주간 KTX를 세울 정도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짧게 방어하고, 겨울을 맞지 않으면 올겨울은 지옥이 된다. 일상을 2주간 정지시키고 다시 느슨한 방어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나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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